신자 ‘가려운곳’ 긁어주고 ‘나눔의 기쁨’ 함께 누려
‘부익부빈익빈’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잘 사는 동네의 큰 교회는 재정이 넘치지만 못 사는 동네에선 교회의 살림도 어렵게 마련이다. 교회 주변에서 눈에 띄는 이들은 도움 받아야 될 사람들뿐이고, 교회에 도움을 줄 신자는 많지 않으니, 지역에서 가난한 이웃을 돕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게 낙후지역 교회들의 아픈 현실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겨우 차하나 다닐 정도의 골목길로 200여 미터 오른 효창동 3-6번지에 만리현성결교회가 있다. 서울의 대표적 낙후지역인 만리동 고개 위 언덕에 서 있지만 정작 교회 안에 들어서니 느낌이 새롭다. 널찍한 마당에서 활갯짓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언덕배기 개나리만큼 반짝인다. 20년 넘게 이 지역 아이들을 돌보다 이젠 어엿한 용산 구립이 된 어린이집 아이들이다. 잠시 뒤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교회로 몰려든다. ‘방과 후 교실’에 오는 21명의 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들이다. 남대문시장과 가까운 이 지역엔 아직도 봉제공장이 많아 생계에 바쁜 부모 때문에 학교가 파한 뒤 방치된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위해 교회가 마련한 것이 지역사회학교다. 이 학교엔 방과후교실 외에도 독서교실, 코스영어, 음악학교 등 다양한 메뉴가 이런 아이들을 기다린다.
만리현교회는 1932년 설립됐으니 올해로 창립 73돌째다. 구도시의 오랜 교회들이 신자들의 고령화와 함께 활력을 잃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94년 이형로 목사(53)가 오면서 이 교회는 더욱 더 활력 넘치는 교회로 변해갔다.
이 목사는 신자들이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라고 하기에 앞서 교회가 신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다. 그래서 신자들에게 ‘서비스’하는 교회를 만들어갔다.
어린이집·홀몸노인 돕기등 지역사회 봉사활동 활발
주일 예배 시간대별 세분화
청년층 위해 뮤지컬 공연도 설립 73돌 신자들 발길 이어
이 교회 주일예배는 시간대별로 5부까지 있다. 주일 새벽 5시30분에도 가족이나 친척의 결혼식 등의 행사나 회사 근무 때문에 낮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단 몇 명의 신자들을 위한 정규 예배를 두고 있다. 이 목사의 부임 뒤 10년 간 장년 출석신자가 350명에서 900명으로 늘어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20~40대 젊은 신자가 60%나 되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로 꼽힌다. 그러나 결과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5부 청년 예배는 통상적 예배가 지루하다며 몸을 뒤틀곤 하는 청년들을 위해 흥겨운 가스펠송을 많이 부르고, 뮤지컬과 연극 공연을 한다.
“갈수록 삶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선택’할 수 있게 해야지요.”
이 목사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예배만이 아니다. 교회 안 팀, 즉 동아리활동도 연말에 ‘팀사역 축제’에서 결정하게 한다. 이 때 신자들은 교회와 지역사회는 무엇을 필요로 하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또 자신이 사명감을 느끼거나 잘 할 수 있는 일을 따져 봉사할 팀을 결정한다. 그러니 신자들은 봉사에 더욱 열정적이고 헌신적일 수 밖에 없다.
인근의 홀몸노인들과 소년소녀가장, 장애우들을 돕는 것에서 나아가 매주 수요일 낮엔 경노당과 효창공원의 노인 등을 모셔 간단한 예배 뒤 점심을 대접하고, 수지침을 놓아드리고, 치매예방을 위해 종이접기를 하기도 한다.
가난한 동네 교회지만 이 교회엔 평균 이상의 헌금이 걷힌다. 교회의 나눔에 동참하는 것을 행복해하는 교인들이 있어 만리동고개가 행복해지고 있다.
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