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이 크리스마스 ‘몰래산타’ 오늘도 뛴다
안양의 산타, 최창남 목사
“넝마주이들이 쓰레기를 뒤지다가 어쩌다 쥐약 먹고 죽은 개를 주우면 운수 좋은 날이었지요. 주운 사람이 개의 내장을 꺼내고 하루종일 푹 끓여놓고 기차가 다니지 않은 철로 위에서 식구들을 기다렸어요. 막소주 댓병을 놓고 권커니 받거니 하다보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 그들의 웃는 얼굴이 보였어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441의2688. 조그만 건물 2층엔 ‘빚진자들의 집’이 있고, 3층엔 빛된교회가 있다. 둘 다 물론 전세다. ‘빚진자들의 집’은 성경의 ‘사랑의 빚진 자 되어’란 구절에서 딴 것이다. 한마디로 사랑이 그리운 사람들의 집이다.
이 집을 이끄는 사람은 최창남 목사(49)다. 벌써 가을을 타는 것일까. 그의 얼굴엔 짙은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난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더 이상 그리울 게 있어보이지 않는다. 사랑에 굶주린 자들을 위해 누가 그 만큼 치열하게 부대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가 군복무를 마치고 신학교에 복학한 뒤 뛰어든 곳이 서울 역 앞 양동 매춘굴과 지금의 남영역 뒤 ‘원효로제2재건대’였다. 양동은 몸을 파는 아가씨들의 아픔과 그들로부터 버려져 방치된 아이들의 슬픔이 나부끼던 곳이었다. 재건대는 죄를 짓지않아도 늘 죄를 이중삼중으로 뒤집어 써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전과자들의 한숨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는 양동에서 맹인전용식당을 운영해 시각장애인들을 도왔고, 재건대 넝마주이들 가운에 호적이 없는 이들의 호적을 만들어주고,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시절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은 결코 웃을 일이라곤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들도 누군가 함께 하며, 무언가를 나눌 때는 행복하게 웃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여러 예수의 모습 가운데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로서 예수를 사랑한다.
소외된 청소년들과 동거동락
사랑의 빚진자 되어 선물·편지주며 그들과 삶의 기쁨 함께 느껴
그는 지금도 늘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 빛된교회를 세운 4년 뒤인 1996년 시작한 ‘빚진자들의 집’에선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먹고 자며 생활한다. 인근 초·중학생들이 공부방으로 사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 이곳에서 5~11월까지 하는 너울터문화학교는 60여명의 청소년들이 영화와 문화재를 감상하거나 노래, 뮤지컬 등을 직접 해보고 얘기를 나누는 곳이다.
온통 사랑만 받고 자라도 모자랄 나이에 외로움과 가난에 절망하는 아이들에 대한 최 목사의 손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와 자원봉사자들은 크리스마스만이 아니라 연중 산타할아버지가 된다. 그는 소외된 아이들을 몰래 찾아가 선물과 편지를 전해주어 삶에서 기쁨을 이어가게 해주는 ‘몰래산타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빛된교회는 청소년과 아이들까지 다 합쳐 신자가 100명 남짓이지만 어느 교회보다 ‘큰 교회’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 돌아가고 싶다’는 천상병 시인의 시 ‘소풍’을 자주 읊조리곤 한다. 그의 과거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그는 경기도 부천 소사 미군부대 부근 개울 옆에서 살았다. 개울엔 언제나 버려져 죽은 혹은 죽어 버려진 아기들이 있었다. 그 아기들 엄마의 대부분은 미군부대 옆에 살던 양색시 누나들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당시 7가구뿐인 시골 마을이던 서울 답십리에서 살았다. 영화를 제작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없어 아버지 주머니에 손을 대다 죽도록 맞기도 했다. 그는 이 시절 돈도 많이 벌고, 음악가도 되고, 소설가도 되고 싶었다. 힘겹고 누추한 삶들의 잔영으로부터 벗어나고만 싶었을 법한 그는 그러나 신학교 시절부터 다시 자꾸만 자꾸만 그들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랑이 그리운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사랑이 그리운 이들이 많다는 것을 그의 삶은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그 때 좀 더 그 사람들을 사랑할 것을/그 때 좀 더 소리 없이 겸손할 것을/그 때 좀 더 꾸짖을 것을….”
그런 삶을 살고도 그는 이렇게 읊조리곤 한다. 좀 더 아름다운 날로 돌아가고, 좀 더 아름다운 날을 만들어가려는 그의 날개짓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그는 이제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랑이 주는 희망을 노래한다.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것들이 불쌍하잖아요.”
그가 갚아야 할 사랑의 빚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그의 애틋한 눈빛 속에 다시 사랑의 그리움이 물들고 있다.
안양/글 조현 기자 cho@hani.co.kr, 사진 황석주 stonepole@hani.co.kr
‘노동의 새벽’ ‘노동해방가’ 작곡가예요
최목사는 노동가요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29살에 서울 시흥2동 산동네에 새봄교회를 설립해 탁아소와 야학, 진료소를 운영했던 그는 전도사라는 직책조차 그들과 하나되는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도사란 이름마저 버리고 경상도의 한 공장으로 들어갔다. 며칠만 일하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가 상해 노동자들이 2~3달을 버티기 어려운 농약공장에서 그는 노동운동을 하며 박노해 시인의 시 ‘노동의 새벽’과 ‘모두들 여기 모여 있구나’, ‘노동해방가’ 등을 작곡했다. 이 노래들은 노동판의 고전이 되었다. 그는 86년 안양에 정착해서도 안양민요연구회와 안양독서회, 우리그림, 안양문화예술운동연합, 한국민족음악인협회 등의 결성에 참여하기도 했다.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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