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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생명교회 문대골 목사

등록 2005-10-28 19:25

“기다리고 어울리면 되는거지”

생명교회 문대골 목사

이념으로 가족 파탄…함석현과 인연 맺고

교회 개척에 민주화운동…“가진자 부족한자 함께”

의도치 않았지만, 인내를 실험한 날이었다. 서울 노원구 상계1동 생명교회에 약속보다 한나절이나 늦어 오후 5시가 넘은 뒤에 도착했다. 문대골(64) 목사가 왜 그리 늦었느냐고 묻지 않았기에 급한 취재 때문이었다는 ‘변명’도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그저 활짝 웃고 있었다.

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 주일 300여 명이 출석하는 어엿한 교회의 담임이고, 전국정의평화실천목회자협의회 의장과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의장을 지낸 데 이어 주한미군범죄근절본부 의장이기도 하지만 차가 없고, 핸드폰이 없어도 조금도 불편해하지 않는 그다. 조급하기보다는 기다림을 체득한 이의 모습이다.

그는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이었고, 큰형은 연희전문에 다녔다. 6·25는 행복하기만 했던 그의 유년을 암흑으로 물들였다. 사회주의자였던 형은 월북했고, 아버지는 집에 들이닥친 우익들에 의해 ‘형을 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어머니는 개가했고, 형을 제외한 5남매는 고아가 되었다. 그의 나이 11살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는 17살에 해병대에 지원 입대했다. 군을 제대해 다시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하는 삶으로 내동이쳐졌다. 서울 단국대 청강생으로 들어가 학생회 활동을 하던 중 3학년 때 함석헌을 모셔 강연을 들은 것을 계기로 함석헌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함석헌이 강원도 고성 해발 600미터 암반덕 초원에 만든 ‘씨알의 농장’에서 2년 간 살기도 했다. 그 곳에서 고향 처녀와 결혼도 했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70년엔 함석헌이 만든 반체제 잡지 <씨알의 소리>의 초대 편집장을 맡았다. 기독교방송에서 방송이 중단됐던 김수환 추기경의 원고를 실어 폐간된 72년 1월까지였다.

그가 허허벌판 산골이던 이곳에 생명교회를 개척한 것도 바로 그 해였다. 그도 가난했고, 교인들도 가난했다. 서로 부둥켜안고 살기 위해 교회 옆에 12평짜리 공동주택 25채를 지어 함께 살았다. 그러나 이 산골까지 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 산골에선 보기 어려웠던 어엿한 직장인들과 큰 평수에 사는 사람들도 교인이 되었다. 문 목사는 그래서 ‘양극의 용해’를 교회의 좌표로 삼았다. 그러면서 그럴듯한 직업과 지식이 있고, 밥술께나 먹는 이들이 어려운 이들을 기다려주고, 같이 손잡고 가는 마음을 지니도록 했다. 이런 그의 목회 철학이야말로 생명 교회가 다양성 속에 조화를 이루는 비결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왜 목사가 그런 일에 더 신경쓰느냐”고 따지는 교인들을 고깝게 보기보다는 고맙게 여겼다. 그들의 집을 더 자주 심방하고, 함께 기도했다. 정년보다 5년 앞서 내년 초 은퇴하기로 한 그는 교회의 후임자 청빙에 대해서도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교회를 ‘끌고 간다’는 생각을 놓은 지 오래다. “끌고 가면 목사만 피곤하지요. 밀고 가도 생명이 죽는 데 끌고 가면 그 생명들이 온전하겠습니까. 기다리면 되는데….” 교회를 나서는데 가난이 익숙해 보이는 60대 여신도가 문 목사를 보고 활짝 웃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잘 익은 포도 한 송이였다. 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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