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 훈훈한 사람 냄새가 그 어떤 경치보다 아름답죠”
신기교회 박승규 목사
전교생, 4명 폐교위기 분교…급식·공부방 ‘학교살리기’
읍내서 역전학 37명으로…황토방 노인시설도 꾸려
언덕과 밭과 사람이 구별 없이 어우러진 해남. 신기교회를 찾아 마산면의 한 골목에 들어서니 넓은 마당에서 나이 지긋한 마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교회 게이트볼 장이다. 교회 마당의 고목 나무 아래 평상에선 아이들이 흥겨움에 겨워 콩 튀듯 튀어 오른다.
재잘대는 아이들의 모습을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운 게 시골마을이다. 이 마을도 다른 시골마을과 다름이 없었다. 2003년 2월에 이 마을에 있는 용전분교에는 재학생이 4명 뿐이었다. 이들도 읍내 학교로 전학할 예정이어서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지역 공동체의 구심체 역할을 하는 학교의 폐교를 마을에서 희망의 문을 닫는 것으로 여겼던 박승규 목사(39)가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때마침 입학할 나이가 된 아들 전영이를 용전분교에 입학시키고 학부모로서 ‘학교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학생수가 적어 축구를 하기도 합창단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학생이 네 명 뿐이어서 급식을 하려고 사람을 고용할 수도 없고, 1인당 2500원씩 1만원을 보고 식사를 준비해 날라줄 리도 없었다. 그 때 급식을 맡겠다고 나선 것이 신기교회였다. 그리고 박 목사는 교회에 새터공부방을 만들었다. 도시와 읍내 아이들과 달리 갈 곳이 없는 마을 아이들에게 교회가 방과 후 학원이자 놀이터로 때로는 오락실로 구실하기로 한 것이다. 움츠러들어야 마땅할 법한 용전분교 아이들이 날로 활개를 치고 행복해지자 읍내로 전학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아가 읍내에 사는 아이들까지 마을로 주소를 옮겨 용전분교로 역전학을 해 이제 재학생이 37명으로 늘었다.
이 학교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서로 서로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너 교회 새터공부방을 찾는다. 영어와 컴퓨터도 배우고, 책도 읽고, 인근 절에서 스님에게 다례까지 배운다.
마을에서 이처럼 행복해진 건 아이들만 아니다. 자식들이 모두 떠나고 둘 또는 혼자만 남아 뼈가 시려오는 외로움을 감내하던 이 마을 노인들. 어느 노인은 어울릴 사람이 없어 자주 혼잣말을 하기도 해 노망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2년 전 교회 안에 황토방까지 갖춘 주간노인시설 ‘새 날을 여는 집’이 문을 열자 노인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 날을 여는 집’에 들어서자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봉사자 선생님을 따라 색종이붙이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1995년 박 목사가 이곳에 부임한 지 10년이 됐다. 교인은 여전히 40여명이지만 신기교회는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리단위 마을의 복지타운을 만들었다. 교회 옆 1천여 평의 땅엔 콩과 고구마를 심어 박 목사 부부와 직원, 봉사자들, 할아버지·할머니, 아이들이 함께 가꿔서 겨울이면 고구마를 구워 간식으로 먹고, 콩으로 메주를 쑨다.
“이곳은 아름다운 산과 계곡과 바다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시골마을의 훈훈한 사람 냄새가 어떤 경치보다 더 좋지 않나요.”
박 목사는 이런 정을 그리워한 사람들이 이 마을을 보러 전국에서 모여들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월드컵 우승보다 더욱 더 아름답고 신기한 꿈이 지금 해남의 한 시골마을에서 여물고 있다.
해남/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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