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여자부가 심상치 않다. 이제 막 시즌을 마쳤지만, 벌써 다음 시즌 판도에 관심이 쏠린다. 데뷔 18년 만에 처음 자유계약(FA)선수 자격을 취득한 김연경(흥국생명)이 현역 연장 의지와 이적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10일 2022∼2023 V리그 여자부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만장일치로 차지한 뒤 현역 연장 의사를 밝혔다. 시즌 막바지 은퇴 가능성을 언급했던 그는 “선수로 조금 더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올 시즌 통합우승을 놓쳤기 때문에 우승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고 했다.
이제 최대 관심사는 다음 행선지다. 김연경은 “흥국생명과 협상 중이고, 다른 구단과도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최우선 조건은 우승 가능성이다. 김연경은 “통합우승을 이루고 싶어서, 그럴 수 있는 팀으로 선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연봉을 낮추는 것에 대해 안 좋은 시선도 있지만, 저는 (연봉 삭감을) 감내하더라도 우승할 수 있는 팀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우승 확률이 높은 팀을 선택한다면 이미 우승권 전력을 갖춘 팀이 고려대상이 된다. 하지만 김연경에겐 다른 선택지도 열려 있다. 김연경의 존재 자체가 해당 팀을 우승 전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연경은 지난 시즌 6위 흥국생명을 올 시즌 정규리그 1위에 올렸다. 한 끗 차이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챔프전 제패도 충분히 가능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어느덧 35살에 접어든 김연경은 “1∼2년 계약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연경은 자유계약선수 중 그룹 A에 속한다. 이 경우 흥국생명은 새 소속팀을 상대로 전 시즌 연봉 300% 혹은 연봉 200%와 선수 1명(보호선수 6명 제외)을 보상받을 수 있다. 기존 강팀들 입장에서는 김연경과 단기계약을 위해 팀 미래를 책임질 주요 전력을 내줄 각오를 해야 한다.
V리그 여자부 페퍼저축은행. 한국배구연맹 제공
리그 꼴찌 페퍼저축은행도 가능한 행선지로 거론되는 건 이런 사정 때문이다. 페퍼저축은행은 오지영, 이한비, 이고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신예다. 보상 선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샐러리캡 부담도 적다. 이른바 ‘핵심 전력’에 대한 갈망도 강하다.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적극적으로 영입에 나섰지만 이고은 1명을 데려오는 데 그쳤다. 시즌 중엔 학교폭력 논란으로 퇴출당한 이재영과 접촉하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만큼 전력 보강 의지가 크다.
배구계에서 입지가 큰 김연경이 다른 선수들과 함께 ‘어벤저스’를 구성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시즌 자유계약선수로 나온 김수지(IBK기업은행) 등은 김연경과 오랜 친구 사이이고, 대표팀에서도 긴 시간 호흡을 맞췄다. 김연경은 “(다음 시즌) 같이 뛰자고 이야기하는 선수가 있다”라며 “워낙 잘 알고 친하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선 제 결정이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흥국생명 김연경과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김수지가 지난 1월29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올스타전에서 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시즌 V리그 여자부는 주요 전력들이 대거 자유계약시장에 나오며 역대급 변동을 예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 1명이 이적하며 미풍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대어’다. 자유계약 협상 마감 시한은 22일 저녁 6시. 약 10일 남은 이 기간에 리그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김연경이 가는 길에 달려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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