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통합우승의 주역인 청주 케이비(KB) 안덕수 감독(오른쪽)과 박지수.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제공.
창단 첫 통합우승의 시간이 다가오던 순간, 여자프로농구 청주 케이비(KB) 안덕수(45) 감독은 종료 1분여를 남기고 최고참 정미란(34)을 코트에 투입하고 싶어 했다. 누구를 빼야하나 고민하는 안 감독의 마음을 헤아린 듯 박지수(21)가 코트 밖으로 나왔다. 안 감독은 놀란 표정으로 “네가 왜 나와?”라고 물었다. 안 감독은 “그 순간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박지수는 “우승이 확정적이라 제가 바꿔달라고 했다. 미란 언니는 우승이 마지막일 수 있으니 배려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승이 확정된 순간 코트에 있었으면 힘들어서 아무 것도 못했을 텐데 벤치에 있으니 더 신났고 세리머니도 잘 할 수 있었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2016년 4월, 안덕수 감독이 케이비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때 의아하게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그는 고교와 대학을 일본에서 다녔고, 프로농구 삼성에서 딱 한 시즌을 뛴 무명이었다. 26살이던 2000년 은퇴 후 대학농구 사무국장을 지내다 2007년 일본 여자농구 샹송화장품 코치를 지낸 게 지도자 경력의 전부다. 안 감독은 “내가 케이비에 부임했을 때부터 ‘감독으로 가능할까’라는 많은 의문점을 남겼을 것”이라며 “박지수를 뽑은 것도 큰 행운이었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을 믿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봤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선발한 1m98의 장신 센터 박지수는 우승에 목말랐던 케이비에 ‘복덩이’였다. 박지수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만장일치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챔피언전 3경기에서 모두 20득점 이상과 10튄공잡기 이상을 해내며 역대 최연소 엠브이피에 등극했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이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안 감독은 “지수가 처음 입단했을 때 키 크고 농구 센스는 있지만 느려서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포워드 라인 선수보다 더 빨리 뛰려고 엄청 노력했다”고 칭찬했다. 그는 이어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더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큰 일을 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안 감독은 “사실 나는 국가대표 감독감이 아니다. 한국 여자농구가 2020 도쿄올림픽에 나간다면 통역이나 허드렛일이라도 하고 싶다. 나는 백업이 좋다”며 몸을 낮췄다.
박지수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무대를 밟고 돌아와 지친 상태였기에 시즌 초반 경기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았다. 그는 “시즌 초반에 너무 힘들었다. 부모님과 의견이 안 맞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는 “우승하니 너무 좋다. 왜 다들 우승하려고 하는 지 이제 알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열성 팬인 박지수는 다음달 7일 타이 방콕에서 있을 방탄소년단 콘서트 예매에 성공한 뒤 콘서트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챔피언결정전이 5차전까지 가면 우승한다는 보장도 없고 콘서트에 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 반드시 3차전에서 끝내고 싶었다”며 “방탄소년단 콘서트가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며 크게 웃었다.
첫 우승에 성공한 안 감독과 박지수는 6년 연속 통합우승을 일궜던 금융 라이벌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처럼 ‘장기집권’을 꿈꾸고 있다. 박지수는 “6연패가 아니라 7연패, 8연패를 하고 싶다”는 당찬 야망을 드러냈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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