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금 기자의 무회전 킥]
24일 강원도 평창의 전지훈련장에서 목을 맨 레슬링 주니어 대표팀 김아무개(50) 감독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부조리의 단면이다.
김 감독은 17년 가까운 기간 고등부 유망주를 가르쳐왔다. 주변의 동료나 후배들은 “내성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6월 레슬링협회에 대한 사법 당국의 조사는 여린 김 감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표면적으로 김 감독의 죽음은 자신도 모르게 레슬링협회의 회계장부에 3천만원에 이르는 매트가 두 번 구입된 허위 사실에 있다. 한 번은 정당하게 구입해 사용해왔지만, 자신이 사인한 영수증까지 첨부된 두 번째 구입 서류는 날벼락이었다.
당국이 레슬링협회 전 사무국장, 경리 담당, 전 협회 회장을 12일 불러 대질심문하면서 김 감독은 누명을 벗었다. 책임자는 수사 결과를 통해 추후 나올 예정이다. 그러나 누명을 벗어났다고 통보를 받은 김 감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을 맸다.
김 감독은 여러 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고 한다. 실제 자신의 억울함이 밝혀지기 전에 만들어진 음성녹음에는 협회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뿐 아니라 경찰의 “유도신문에 다 넘어갔다”는 대목이 나온다.
보통 체육 지도자들의 약점은 훈련비 횡령에 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대한체육회는 전지훈련 때 숙박과 식비를 카드로 지원한다. 목욕비, 교통비, 회식비는 없다. 어린 선수들에게 고기 한 번 사 먹일 경비조차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지도자들은 숙박비나 식비에서 이른바 카드깡을 통해 필요 경비로 쓴다. 김 감독도 2010년부터 6년간 연간 두 차례 열리는 전지훈련에서 선수 25명을 가르치면서 이런 방식으로 회식비를 만들었다.
규정보다는 관행에 의해 예산을 집행하는 체육인들에게 1차적인 문제가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지 못하는 한국 체육의 구조에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지도자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1인당 2만5천~3만원의 숙박비 항목에서 따로 돈을 떼내는 지도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한 체육단체 직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숙박비 책정은 청소년 선수들조차 모텔에서 재워야 한다는 것을 정부가 용인하는 셈”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체육계도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추가 경비까지 포함해 예산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레슬링협회가 최근 6년간 예산 항목의 용처를 바꿔 사용한 것도 협회 통장으로 돈 관리를 했더라도 규정에 어긋나 30억원 횡령 논란을 빚고 있다. 체육계 관행과 협회 관계자의 서류 조작, 경찰의 약점캐기 조사, 문체부 등 체육 정책 당국의 무관심까지 김 감독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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