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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세리머니’ 박종우는 일본선수를 위로했다

등록 2012-08-13 20:04수정 2012-09-19 09:09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정윤수의 안과 밖 런던 17일 열전을 돌아보며
흔들리며 피어난 올림픽의 꽃들
박종우 엉겁결 ‘독도 팻말’ 전
패배한 일본선수 손잡고 위로
유도 에비누마와 육상 류샹 등
진정한 승부사의 모습 보여줘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폭염의 열대야와 맞서가며 밝아오는 아침까지 거의 모든 종목을 응시했던 한여름 밤도 끝나가고 있다. 이 대단원 앞에서, 문득 돌아보니, 역시 시인의 말대로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어났음을 실감하게 된다.

우선 박종우 선수 이야기를 해보자. 동메달을 목에 거는 환희의 시상대에 그는 없었다. ‘독도는 우리 땅’ 세리머니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경기장 내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의사 표출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와 국제축구연맹은 어떤 신념을 경기장 안에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으로 문제 삼는 중이다. 이 점은 주의했어야 한다.

물론 박종우는 계획적으로 일을 꾸미지 않았다. 오히려 올림픽위원회가 선호하는 ‘올림픽 정신’을 실천한 선수이기도 하다. 박종우는 축구 3~4위전 뒤 그라운드에 앉아 울고 있는 일본의 오쓰 유키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껴안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오쓰 유키도 박종우의 진심 어린 위로를 받아들였다. 이런 점이 두루 참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누가 올림픽 정신을 지켰던가. 내 임의로, 우리 선수들을 제외하고, 경기 외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메달을 수여해도 된다면, 우선 단 2명이 참가한 소말리아의 선수들에게 동메달을 선사하고 싶다. 출전 선수인 모하메드 파라는 외신 인터뷰에서 “20년 동안 진짜 정부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사실상의 무정부 상황에서 출전한 2명의 소말리아 선수들은 출전 그 자체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천한 것이다.

은메달은 남자 110미터 허들의 류샹 선수를 생각하고 싶다. 그는 첫번째 허들도 넘지 못하고 메달의 꿈을 접었다. 오른발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 때의 악몽이 재현되었다. 그때 110미터를 완주하지 못하고 선수 대기실로 황급히 돌아갔다. 그래서 겁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대기실로 빠져나가려던 류샹은 마음을 고쳐먹고 왼발만으로 고통의 뜀뛰기를 하며 ‘기나긴’ 110미터를 달렸다. 결승선에는 헝가리의 벌라주 버이 선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부축을 하게 되면 실격이 되기 때문에 버이 선수는 류샹이 결승선을 통과하기를 기다렸다가 정성껏 부축하여 휠체어로 인도했다.

그렇다면 금메달은? 세상이 그렇듯 올림픽에서도 석연치 않은 판정도 있었고 ‘마피아’ 같은 국제올림픽위의 권력 행세도 심했다. 그 한복판에서 몇몇 선수들이 ‘승패의 고결함’을 지켰다. 올림픽 역사에는 그런 자취가 수두룩하다. 1932년, 영국 펜싱 선수 주디 기네스는 오스트리아의 엘렌 프라이스를 판정승으로 이겼으나, 곧 자기가 프라이스의 칼에 두 번이나 찔렸다고 고백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에비누마 마사시가 그랬다. 남자 유도 66㎏급 8강전에서 연이은 판정 번복으로 조준호를 이긴 일본 유도 선수다. 그 경기 이후, 에비누마는 4강을 거쳐 동메달을 땄고 조준호는 패자부활전을 거쳐 같은 시상대에 올랐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에비누마는 시상식 뒤 “사실은 준준결승에서 졌는데 관객들이 밀어줘 살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진심인 것은 8강전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조준호의 승리를 선언하자 일본 팬의 야유가 들끓었고 심판위원장이 심판들을 불러 번복을 암시했다. 그때 에비누마는 시종 착잡하고 당황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승리가 확정된 뒤에는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시상대 위에서도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단호하고 엄정해야 할 승패의 세계가 어수선하게 일그러졌다는 것, 그 원치 않는 승리의 잔을 에비누마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했다.

이번 대회에서 수많은 선수들이 승패의 세계에 몰입했다. 어떤 선수는 감격스런 성취에 눈물 흘렸고 또 어떤 선수는 애통하여 눈물 흘렸다. 그들을 대표하여 석연치 않은 판정에 시종 침통한 표정을 지었던 에비누마에게 금메달을 주고 싶다.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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