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김연경이 지난해 12월30일 경기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V리그 여자부 현대건설과 경기 도중 공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반환점을 돈 V리그에서 흥국생명이 리그 판도를 뒤흔드는 핵으로 떠올랐다. 애초 김연경(35) 복귀 효과로 상승세를 타며 선두 자리를 넘보던 중 갑작스럽게 단장과 감독 동시 경질을 단행했는데, 이번 결정이 가져올 파장이 우승 경쟁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흥국생명은 현재(3일)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다. 14승4패 승점 42. 선두 현대건설(승점 45)과 승점 단 3점 차이다. 지난해 12월30일 열린 두 팀 맞대결에서 흥국생명이 승리했을 땐 승점이 동률(42점)을 이루기도 했다. 적수가 없어 보였던 현대건설 아성을 위협하며 당당히 2강 체제를 만들었다. 지난 시즌 기록했던 충격적인 순위(6위)는 잊은 지 오래다.
상승세는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18경기(3라운드)를 치른 가운데 흥국생명은 총 69세트에서 1613득점을 기록했다. 세트당 23.4득점. 전체 2위다. 공격 성공률은 41.76%로 1위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기록했던 세트당 22.1득점(5위)과 공격 성공률 35.97%(5위)보다 눈에 띄게 좋아졌다. 리그 최정상급 화력이다.
흥국생명 김연경(가운데)과 팀 동료들이 지난해 12월30일 경기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V리그 여자부 현대건설과 경기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돌풍 중심에는 김연경이 있다. 올 시즌 흥국생명에 합류한 김연경은 18경기에서 349득점을 내며 경기당 평균 19득점을 기록했다. 총 득점 리그 6위. 국내 선수 가운데는 독보적 1위다. 공격 성공률은 47.01%로, 득점 10위권 선수 가운데 양효진(48.88%)을 제외하면 적수가 없다. 팀 내 외국인 선수 옐레나(44%)보다도 날카롭다. 그야말로 ‘김연경 매직’이다.
올 시즌 리그에 복귀하며 “팀을 어디까지 올려놓을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던 김연경은 이제 “우승 욕심이 난다”며 1위 자리를 노린다. 실제 흥국생명은 지난 30일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하며 현대건설에 438일 만에 안방 패배를 안겼다. 현대건설은 이날 패배로 306일 만에 연패를 기록했다. 김연경은 이날 경기 때도 30득점을 뽑으며 맹활약했다. 김연경은 여기에 더해 흥행(관중동원 1위·평균 4380명)까지 이끌며 팀 분위기 전체를 끌어올리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대로 선두를 향해 순항하는 듯했다. 특히 최근 현대건설이 외국인 선수 야스민을 부상으로 잃으며 순풍까지 탔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던 때 대형 변수가 생겼다. 흥국생명이 2일 김여일 단장과 권순찬 감독을 동반 경질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질은 당일 통보로 이뤄졌다.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과 어긋났다는 게 경질 이유다. 권 감독은 이로써 부임 8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현대건설을 꺾은 지 겨우 3일째 되던 날이다.
어떤 점에서 구단과 감독 사이에 방향성 차이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선수단 기용 문제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베테랑 선수를 주로 기용한 권 감독과 젊은 선수 육성을 원하는 구단 사이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났다는 해석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흥국생명은 스스로 변수를 자초한 셈이 됐다. 새해 벽두부터 선장을 잃은 선수단도 동요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흥국생명은 당분간 이영수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다.
상승기류를 타던 도중 감독 경질 폭풍우를 만난 흥국생명이 계속 순항할 수 있을까. 흥국생명은 5일 지에스(GS)칼텍스와 안방 경기를 시작으로 4라운드에 돌입한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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