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이 19일(한국시각)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필드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바를 넘고 있다. 유진/AFP 연합뉴스
83㎏→65㎏.
상상할 수 없는 체중 감량이다. 먹고 싶은 라면도 일년에 딱 한번 허락할까 말까다. 욕망을 이겨낼 수 없다면, 날 수 없다. 2m35의 바는 절대 낮지 않다. 사무실이나 아파트에서 천장 높이(2m20~2m30)를 재보면 알 수 있다. 육상 높이뛰기는 깃털처럼 가벼운 ‘초인’들의 대결이라는 것을….
죽기 살기로 살을 빼 갸름한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이 19일(한국시각)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필드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에서 2m35를 넘어 은메달을 따냈다. 육상 도로 종목(마라톤·경보)이 아닌 필드앤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룬 한국 최고의 성과다. 우상혁은 지난해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4위(2m35)를 차지해 올림픽 한국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높이뛰기는 30m 내 거리에서 도움닫기, 발 구르기, 수직상승, 공중동작, 착지를 통해 경쟁한다. 스피드가 없다면 점프로 띄운 몸을 지속해서 끌어올리는 궤적을 그릴 수 없다. 또 너무 빨리 달리면 도약 때 발목이 다칠 수 있다. 체중을 빼더라도 순간 폭발력을 낼 수 있는 탄력을 갖춰야 하고, 타이밍을 맞춰 공중에서 허리는 아치를 그려야 한다. 떨어질 때의 공포감을 극복하는 담력도 필요하다.
이날 13명의 결선 진출자 모두는 첫 시험대인 2m19를 가뿐히 넘었다. 하지만 2m24(1명 탈락), 2m27(2명 탈락), 2m30(5명 탈락) 등 높이가 올라갈수록 명암이 갈렸다. 더 열심히 준비한 자가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우상혁은 5명이 경쟁한 2m33 높이에서는 두번이나 바를 건드리며 위기를 맞았지만 3차 시도에서 오히려 관중의 박수를 유도하며 결국 해냈다. 2m35 높이에서는 이날 우승한 무타즈 에사 바르심(31·카타르)과 함께 둘만 통과하면서 사실상 은메달을 확보했고, 2m37 1차 시도 실패 뒤 2m39로 높이를 올린 시도에서도 성공하지 못하며 가볍게 2m37를 돌파한 바르심을 추월할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상혁을 높이뛰기로 안내한 윤종형 대전 신일여고 지도자는 “바르심이나 유럽 선수들보다 단신의 불리함이 있지만 어려서부터 스피드와 반사 능력으로 약점을 보완했다. 몸무게를 줄이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그 독기가 무섭다”고 평가했다.
그는 8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발이 왼발보다 작은 짝발이다. 하지만 “구름발인 왼발을 다쳤으면 높이뛰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겐 천운”이라며 유머 있게 말한다. 어려운 순간이 닥치면 소리를 지르고, 주문을 외우면서, 관중의 박수를 유도해 벗어난다. 바를 넘은 뒤 검지를 허공에 찌르는 등 춤 동작으로 기운을 다지는 것은 그의 쾌활한 성격을 보여준다.
세계 최강인 바르심과의 경쟁에서는 전술적으로 연구할 부분이 있다. 우상혁은 이날 2m19 시기부터 출발을 했고, 2m33 시기에 두번이나 실패하면서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바르심이 2m24부터 출발해 2m37까지 단 한번에 넘어선 것과 비교된다.
우상혁은 경기 뒤 “2m33에서 3차 시기까지 가는 등 경기 운영이 다소 매끄럽지 못해서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 바르심 선수가 컨디션이 더 좋은 것을 인정한다. 준비를 철저히 해서 내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과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금메달 획득에 도전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상혁은 이날 바르심과 함께 도쿄올림픽 공동 금메달을 따냈던 이탈리아의 잔마르코 탐베리(2m33·4위)를 따돌렸다. 앞으로는 사상 첫 세계선수권 3연패를 일군 초특급 바르심과의 잦은 정면승부가 예상된다. 늘 긍정적이기에 그가 언젠가 정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는 높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