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트 훈련 거르면 이상해요.”
그 말 그대로다. 햇빛에 그을린 팔뚝이 옷을 찢을 듯 팽팽하다. 반바지 아래 드러난 허벅지엔 힘줄이 불거져 있다. 육중한 몸끼리 부닥치고, 뒹굴고, 달려야 하는 럭비. 그들의 긴장감은 몸에서 이미 드러났다.
한겨레TV <스포츠왓수다>에 출연한 한국 7인제 럭비 대표팀 주장 박완용(37·한국전력). 그는 “하루라도 체력운동 안 하면 불안하다”라고 했다. 럭비는 레슬링, 축구, 핸드볼, 육상 등이 결합된 경기여서, 한 번 뛰면 온몸이 아파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한다. 하루 1시간 상체, 다음날 하체 웨이트를 반복하는 것은 럭비공을 잡은 이래 습관이 됐다. 몸이 무기인데, 근력으로 다지지 않으면 싸움에서 버틸 수 없다.
2020 도쿄올림픽 진출은 1923년 국내에 럭비가 도입된 이래 98년 만의 사건이었다. 근육맨 박완용에게도 잊을 수 없는 무대였다.
결과는 5연패 최하위(12위) 마감. 조별리그 뉴질랜드(5-50), 두 번째 호주전(5-42), 세 번째 아르헨티나전(0-56) 3패에 이어 순위 결정전 아일랜드전(0-31), 일본전(19-31)까지 속수무책이었다.
박완용은 “경기 경험에서 차이가 컸다. 순간순간 이뤄지는 판단에서 뒤졌다”고 돌아봤다. 하긴 시즌 10개 대회 이상 출전하는 상대팀들과 달리 한국엔 아시아 시리즈 세 대회밖에 실전 경험할 기회가 없다. 일본조차 덩치 좋은 귀화한 외국인 선수가 4명이나 된다. 일본 여자 럭비 대표팀에도 귀화 선수가 있다.
그렇다고 한국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가령 스크럼 싸움에서 한국은 잘 밀리지 않는다. 7인제의 경우 3명씩, 15인제는 8명씩 어깨를 맞대고 버티는데, 스크럼 사이로 공을 굴리면 발로 긁어서 뒤로 빼줘야 하는 이 싸움에서 지면 공격을 전개하기 힘들다.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 럭비대표팀의 주장 박완용이 1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스튜디오에서 패스 시범을 보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1m73의 단신인 박완용의 포지션은 ‘스크럼 하프’로 스크럼에 공을 투입하며, 빠져 나온 공을 배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축구로 치면 공격형 미드필더인데, 여기서 어떻게 공이 전달되는가에 따라 득점 확률이 달라진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정연식(27·현대글로비스)과 코퀴야드 안드레 진(30·대한럭비협회) 등이 트라이에 성공했다. 박완용은 “기회를 살린 선수들이 잘했고, 장용흥(28·NTT)도 뒤에서 공을 잘 연결해 주었다. 이것은 또한 다른 동료들의 희생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럭비 선수는 세리머니도 화려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럭비가 유별난 점은 여럿이다. 앞이 아니라 옆으로, 뒤로 패스하며 전진해야 한다. 스크럼이나 드로인 할 때도 우리편과 상대편의 중립지역에 공을 굴리거나 던져야 하니 이것도 야릇하다. 7인제의 경우 2분간 퇴장을 받으면 총알같이 뛰어나가는데, 벤치에 앉는 순간부터 페널티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경기 끝나면 ‘노 사이드’(어느 편도 없다) 선언을 하는데, 죽일듯이 격렬하게 싸웠던 선수들 같지가 않다. ‘럭비공처럼 튄다’는 말처럼 공의 궤적도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박완용은 “럭비공 유심히 보면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서리가 수직으로 떨어지면 위로 오르고, 비켜서 떨어지면 비례해서 빗겨 튕긴다. 공을 정확하게 잡고, 던지기 위해 선수들이 테니스공 여러 개로 저글링하며 감각을 키우는 것도 럭비의 섬세한 부분이다. 공을 잡다가 손가락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더 집중력이 필요하고, 몸이 아니라 머리로 상대를 무너뜨려야 한다.
도쿄올림픽에서 맛본 세계적 팀과의 경쟁은 한국 럭비의 자산이 됐다. 11월 2022 월드컵 아시아예선, 내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더 많은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올해 출범한 럭비협회 집행부도 전지훈련 등 선수단 지원에 적극적이고, 외국인 기술자문인 찰리 로우도 전술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다만 성인팀인 실업팀이 한국전력, 포스코, 현대글로비스, 상무 4개에 불과하고 중고대학을 포함한 전체 등록선수가 1000명인 것은 근본적인 한계다. 전용 경기장 등 인프라도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완용은 “요즘엔 몸싸움을 하지 않고 공을 갖고 뛰고, 트라이를 하는 태그럭비가 있다. 부상 염려가 없어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럭비 캠프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면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보급형 럭비든, 학교 클럽활동이건 럭비를 접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럭비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럭비 안 하면 못살아요”라고 하는데, 진심으로 들린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 제작진
프로듀서 | 이경주 김도성
취재/진행 | 김창금 김우석
기술 | 박성영
촬영 | 장승호 권영진
색보정/종합편집 | 문석진
연출 | 이경주
제작 | 한겨레TV X 이우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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