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영표. 다 안다. 그의 스텝오버. 그러나 알고도 당한다. 현란한 몸짓은 이제 추억이 됐다. 그 시절이 그리운 팬들이 가끔 ‘이영표 스페셜’을 찾는 이유다.
한국 기술축구 계보에서 우뚝한 이영표(44) 강원FC 대표 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실력은 여전했다. 최근 한겨레TV <스포츠왓수다>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헛다리짚기로 중심을 무너뜨리는 ‘초롱이’ 스텝오버를 비롯해 리프팅, 가슴 트래핑, 발바닥 컨트롤 등 다양한 기술을 보여주었다.
조기축구 동호회 회원들을 위한 비법도 대방출했다. 먼저 공중볼의 가슴 트래핑. 이영표 대표는 ‘후~’하며 숨을 내쉬면서 받으라고 했다. 숨을 멈추고 힘을 주면 가슴이 경직돼 공이 튕겨 나간다. 하지만 가슴에 공이 닿는 순간 ‘후~’하고 빨리 숨을 내쉬면 속도가 죽는다. ‘후~’ ‘후~’만 반복해도 공중볼을 발 앞에 떨구기가 쉬워진다.
리프팅은 방법이 없다. 그냥 해야 한다고 했다. “공의 각 지점에 3만번은 닿아야 감이 익는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이영표 대표는 “중학 시절 형들 경기할 때 옆줄 밖에서 경기 끝날때까지 한번에 8000번 이상도 했다”며 웃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선, 친구 한명 불러 경쟁하면서 하라고 한다.
그 다음엔 발바닥 컨트롤. 전후좌우 발바닥 아래 공을 잡고 밀고 끌 수만 있으면 절대 공 안 빼앗긴다. 이 대표는 “발바닥 드리블은 공을 계속 내 반경 안으로 모으는 기술이다. 발바닥만 잘 써도 축구를 고급스럽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선수 은퇴 뒤 해설위원을 거쳐, 이제 축구 행정가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 대표. 그가 지도자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그는 “축구 발전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축구 기술의 전수가 하나라면, 축구를 잘 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만드는 게 다른 하나다. 난 두번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랜 유럽 생활을 통해 알게 된 동서양 축구문화의 차이, 한국축구의 장단점,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배운 경험 등은 자산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그는 ‘축구 철학자’이며, ‘뛰어난 교양인’의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철저한 준비와 노력을 통해 스스로 이룬 것이다. “선수 시절 막기 힘들었던 상대는 없었다. 내가 준비했기 때문”이라는 말과도 연결된다.
은퇴 직전 미국프로축구 밴쿠버에서 뛴 것도 계획표에 따른 것이다. 그는 “축구는 유럽이 최고지만, 스포츠 마케팅은 미국이 최고다. 수 없이 많은 연구자료가 나오는 현장에서 배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업무로 심신이 지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찾는 위안은 가족이다. 그는 “아내와 집 앞 벤치에서 바닐라 라떼 한잔 마시며 쉴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 제작진
프로듀서 | 이경주 김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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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 박성영
카메라 | 장승호 권영진 박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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