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야구·MLB

“야구 좋아하세요?”…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27]

등록 2022-09-27 11:00수정 2022-09-28 02:41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김균섭씨의 여자친구. 본인 제공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김균섭씨의 여자친구. 본인 제공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야구 좋아하세요?”

꿈만 같았다.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슬램덩크 만화책 속 소연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살면서 나도 이런 질문을 받다니…. 우리의 첫 만남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말이다. 남중-남고에서 충실하게 교육받았던 나는 여성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분히 교육받지 못했다. 그래서 늘 이성 앞에 서면 벌벌 떨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녀와 처음 만난 그 자리 역시 그랬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야구와 함께 컸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장난감을 받을 때, 나는 야구 배트나 글러브를 사달라고 했다. 우리 집 마당은 항상 동네 야구장이 되었고, 야구를 하고 싶은 동네 아이들은 내가 모아둔 장비를 갖고 건물 모퉁이를 베이스 삼아 치고 달렸다.

생애 첫 야구는 내 마음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벌써 20년이 지난 그 날. 초등학교 4학년 때 본 그 순간이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내가 응원하는 삼성 라이온즈가 6-9로 뒤진 상황이었다. 주자는 1, 2루. 이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레전드 이승엽 선수. 이승엽답게 동점 쓰리런 홈런을 날렸다. 여기에 마해영 선수의 백투백 역전 끝내기 홈런까지. 그가 베이스를 돌 때, 나도 거실을 뱅글뱅글 뛰어다녔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야구를 그렇게 좋아했기에, 마음속에 늘 품고 있는 꿈 꾸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야구장을 찾는 연인의 모습이다. 꼭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해야 하고, 각자 다른 유니폼을 입고 열렬하게 때로는 서로 놀리며 응원하는 모습을 꿈꿨다,

야구장을 찾은 김균섭씨와 여자친구. 본인 제공
야구장을 찾은 김균섭씨와 여자친구. 본인 제공
“야구 좋아하냐”는 단 한마디로 그 자리에서, 나는 완전히 달라졌던 것 같다. 야구 중계를 보며 늘 부러워했고 꿈꿨던 모습을 나도 드디어 할 수 있게 됐다! 기쁨이 분출되더니 굳었던 입도 말문이 트였다. 그날 그 자리는 내 인생을 통틀어 여자 앞에서 가장 많은 말을 한 날이었다.

어색했던 그녀와 나 사이는 야구 이야기가 다 채워줬다. 우리 사이는 야구가 이어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삼성 팬이었고, 그녀는 하필 두산 팬이었다. 평소 두산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더욱 좋았다. 그녀는 야구가 좋아 야구장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한 얘기, 오재원 선수(두산)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선수를 보러 여기저기 다녔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나는 이미 그녀와 잠실에서 야구를 보며 그녀를 놀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나의 여자친구가 되었고, 이 분은 야구장에서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은 자기가 가장 좋아했던 두산 시절 선수들이 많이 빠져나가 속상하다면서도, 김재호 선수 응원가에 맞춰 열심히 율동을 따라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행복했던 왕조 시절이 저물고 암흑기에 접어든 삼성은 유독 두산만 만나면 더욱 약해졌다. 그래서 함께 보러 갔던 삼성과 두산 경기는 대부분 두산이 이겼다. 선수들 주제가에 맞춰 누구보다 열심히 춤을 추는 그녀. 경기까지 이기니 흥이 넘치는 여자친구의 텐션은 한없이 높아졌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긴 하지만, 우리가 5년만 더 일찍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들곤 했다. 무서울 것 없던 삼성 왕조가 버티고 있던 그 시절. 그때 만났더라면 나도 신나 날뛰었을 텐데…. 아쉬움이 아주 조금 남는다.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맞붙었던 2015년 한국시리즈. 당시 두산이 삼성을 4승1패로 꺾고 우승하며 ‘삼성 왕조’는 막을 내렸다. 연합뉴스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맞붙었던 2015년 한국시리즈. 당시 두산이 삼성을 4승1패로 꺾고 우승하며 ‘삼성 왕조’는 막을 내렸다. 연합뉴스
바람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한국시리즈다. 잠실에서 그녀는 하얀색 두산 유니폼을, 나는 푸른색 삼성 유니폼을 입고서 서로 놀려대며 야구를 보는 것. 혼자서 상상하곤 했는데, 상상만으로도 기쁘다. 그녀는 두산 응원가에, 나는 최강 삼성 구호에 맞춰 신나게 율동을 추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찍힌다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

꼭, 머지않아 그날이 오면 좋겠다.

김균섭(서울 영등포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손흥민, 이번엔 우승컵 들까…리버풀과 카라바오컵 결승행 격돌 1.

손흥민, 이번엔 우승컵 들까…리버풀과 카라바오컵 결승행 격돌

전지희, 신유빈과 대결 뒤 조촐한 은퇴식…“마지막 경기 특별했다” 2.

전지희, 신유빈과 대결 뒤 조촐한 은퇴식…“마지막 경기 특별했다”

빙판 위 ‘람보르길리’ 김길리 “중국 견제? 더 빨리 달리면 되죠” 3.

빙판 위 ‘람보르길리’ 김길리 “중국 견제? 더 빨리 달리면 되죠”

NBA 돈치치 떠나보낸 댈러스팬 ‘농구장 앞 장례식’ 4.

NBA 돈치치 떠나보낸 댈러스팬 ‘농구장 앞 장례식’

바람 많이 맞아야 하늘 지배한다…‘V자’ 날개를 펴라 5.

바람 많이 맞아야 하늘 지배한다…‘V자’ 날개를 펴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