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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인 그놈은 신문 1면, 나는 재수생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24]

등록 2022-09-06 11:00수정 2022-09-07 02:04

2008년 KBO리그 한국시리즈 1차전 당시 김재현(SK 와이번스)의 모습. 연합뉴스
2008년 KBO리그 한국시리즈 1차전 당시 김재현(SK 와이번스)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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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1994년. 나는 재수생이었다.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전철을 타고 재수학원에 다니며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는 아주 모범적인. 당시 전철에서는 신문을 팔았다. 석간신문도, 스포츠 신문도 있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10월 정도였나 보다. 누군가 읽고 버린 스포츠 신문이 전철 빈자리에 놓여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0세 거포 김재현”이라는 제목으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의 선수가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그때 내가 뱉은 첫소리는 “쳇.”

같은 스무살인데 저 친구는 신문 1면에 나오는 잘나가는 야구선수고, 나는 콩나물 전철에서 기를 쓰고 영어단어를 외우는 재수생인 데서 오는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속으로는 ‘잘났어. 정말~’이라며 시샘했을지언정 동갑내기라는 동질감으로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나를 야구광으로 이끄는 1등 공신이 된다.

이후, 내 고향 인천 야구 연고 팀은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현대 유니콘스가 되었다. 그런데 현대가 덜컥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겨 버렸다. 그때 나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야구에는 아예 관심을 끊었다. 그러던 중 에스케이(SK) 와이번스가 찾아왔다. 그래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야구팀이 될 거란 생각에 추석 연휴가 되면 친구와 문학구장을 찾기도 했다. 무사 만루에 1점도 못 내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인천팀이니까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인천을 떠났고, 타지에서 지내면서 2007·2008년에 에스케이가 우승했다는 뉴스를 봤다. 어머나! 야구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때였지만 그래도 애향심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그때 신문에서도 김재현이 스포츠면 톱에 있었다. 어머나! 그때 그 동갑내기 선수가 내 고향 인천에서 큰일을 해 주었다는 생각에 고맙고도 뿌듯했다.

이후 인천에 갈 때면 꼭 문학구장을 갔다. 역시 김재현은 인상적인 플레이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재현 이야기만 했다. 게다가 그때는 김성근 감독이었고 김광현은 깔끔한 폼으로 공을 뿌려댔다. 야구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야구장에 같이 갔던 아버지는 ‘풀카운트’라는 용어 외에 여러 야구 지식을 알려주셨다.

2010년까지 나는 야구 덕분에 정말 행복했다. 그해 하루 마무리는 에스케이가 이기는 것을 보는 것일 정도였다. 하지만, 동갑내기 김재현은 2009년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한 뒤 “내년엔 우승하면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기분이 참 묘했다. 그에게 감정 이입이 되면서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 보이는데 벌써 은퇴할 때가 된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는 야구의 흐름을 따르고 나는 나의 흐름을 따르는 것일 테지만, 나와 나이가 같은 누군가가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갑자기 나도 나이가 확 들어버린 느낌이랄까.

2010년 KBO리그 한국시리즈 시상식에서 당시 에스케이(SK) 와이번스 주장이었던 김재현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 KBO리그 한국시리즈 시상식에서 당시 에스케이(SK) 와이번스 주장이었던 김재현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 에스케이는 한국시리즈에서 생각보다 싱겁게 우승을 했고, 김재현은 그의 결심대로 은퇴했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때 마음 한쪽 어딘가 은퇴 당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나이의 흐름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2010년 36살은 한창때지만, 그냥 그땐 그랬다.

최근 문득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김재현은 지금 야구해설위원이라고 한다. 이제는 야구를 보지 않기에 그의 해설을 들은 적이 없지만, 그래도 응원한다. 동갑내기가 잘 되면 그냥 나도 잘 될 것 같아서다.

조지혜(세종 소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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