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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안녕 이대호, 안녕 나의 20대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23]

등록 2022-08-30 10:53수정 2022-08-31 02:34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지난 7월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올스타전 클리닝타임 때 가진 은퇴투어 기념식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지난 7월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올스타전 클리닝타임 때 가진 은퇴투어 기념식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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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필자는 롯데 자이언츠 팬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부산이었고, 그곳에서 ‘롯데 숭배’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여느 부산 아이와 다를 바 없이 롯데를 통해 야구를 접했고, 야구는 삶의 일부분이 됐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야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질 무렵, 롯데에 불세출의 스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05년. 아직도 나는 강렬했던 이대호의 등장을 잊을 수 없다. 2004년까지 그저 그런 유망주였던 이대호는 2005년 터질 조짐을 보이더니, 2006년 마침내 최고의 야구선수에 등극했다.

이른바 ‘8888577’이라 불리던 롯데 최악의 암흑기 시절(물론 지금도 잘하지는 않는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심을 채워주는 건 오직 ‘손민한’과 ‘이대호’뿐이었다. ‘꼴데’(꼴찌 롯데)라는 명칭의 치욕 속에서도 이대호만은 구도 부산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부산 사람들은 그를 부산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라 불렀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2005년 7월16일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8회말 결승 투런 홈런을 친 뒤 관중에게 헬멧을 벗어 인사하고 있다. 이날 이대호가 속한 동군은 서군을 6-5로 꺾었고, 이대호는 경기 최우수선수(MVP)인 ‘미스터 올스타’에 뽑혔다. 인천/연합뉴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2005년 7월16일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8회말 결승 투런 홈런을 친 뒤 관중에게 헬멧을 벗어 인사하고 있다. 이날 이대호가 속한 동군은 서군을 6-5로 꺾었고, 이대호는 경기 최우수선수(MVP)인 ‘미스터 올스타’에 뽑혔다. 인천/연합뉴스

실력 외의 요건도 확실했다. 불우한 가정환경, 할머니가 좌판 장사를 하며 키운 남자. 힘든 성장기. 그 모든 걸 실력으로 극복하고 프로에 입단한 스타. 롯데와의 계약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눈물지은 사나이. 한눈 팔지 않고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준 여자친구와의 결혼. 완벽한 부산 사투리까지. 이대호는 부산의 스타가 되기 위한 자질을 모두 갖춘 남자였다.

2006년부터 이대호를 보기 위해 사직구장을 계속 드나들었다. 2008년 ‘사직 예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등장과 함께 롯데 야구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나는 2009년 때 마침 고등학교를 사직야구장 근처 학교로 가게 됐고, 더 롯데 야구에 열광하게 됐다.

2010년엔 이대호가 세계 신기록(9경기 연속 홈런)을 썼다. 부산 학교들은 난리가 났다. 여고든 남고든, 가리지 않고 롯데 열풍이 불었다. 롯데백화점이 신세계 센텀시티점 개장에 맞춰 ‘마케팅이 뭔지 알려주겠다’며 이대호 사인회를 열었다는 도시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 내 10대 후반기는 오롯이 그와의 추억만이 강렬하게 남았다.

그리고 내 10대가 끝나자, 귀신 같이 이대호는 롯데를 떠났다. 더 큰 무대를 향한 도전. 그는 일본 오릭스로 건너갔다. 2012년 롯데는 여전히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빅 보이’가 빠진 팀은 뭔가 아쉬웠다.

서울로 올라와 사직 대신 잠실을 더 자주 찾을 무렵, 이대호가 빠진 롯데는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대체자를 영입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울 수 없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군대에 갔다. 누구도 오지 않는 최전방. 쓸쓸한 고독에 지쳐 고향을 그리워했다. 해가 바뀐 2017년, 파주에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의 복귀. 이대호는 그렇게 다시 자이언츠로 왔다.

이대호가 2017년 1월30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입단식 중 손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이대호가 2017년 1월30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입단식 중 손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제공

그해 참 행복했다. 군대에서 며칠 밤을 새우며 일을 해도, 이대호의 야구를 보면 힘이 났다. 롯데는 후반기 ‘진격의 거인’ 모드를 보여주며 3위로 가을 야구에 진출했다. 일이 힘들어도, 상관에게 혼이 나도…. 무엇이 대수랴! 롯데가 잘하고 있는데.

전역 후 나는 어느덧 부산보다 서울이 익숙한 직장인이 됐다. 나이도 어느덧 30줄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은퇴한다. 나의 희로애락에는 언제나 이대호가 있었다. 내 어머니가 ‘최동원의 롯데’를 그리워하듯, 나 역시도 이젠 ‘이대호의 롯데’를 그리워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그와 함께했던 그 시절 나에게도 작별 인사를 보낸다.

“안녕 이대호, 안녕 나의 20대.”

반진욱(서울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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