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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덕분에, 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22]

등록 2022-08-23 12:55수정 2022-08-24 02:33

에스케이(SK) 와이번스 한유섬(당시 한동민)이 2018년 11월2일 인천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넥센 히어로즈와 5차전 경기에서 10회말 끝내기 홈런을 날리고 기뻐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에스케이(SK) 와이번스 한유섬(당시 한동민)이 2018년 11월2일 인천 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넥센 히어로즈와 5차전 경기에서 10회말 끝내기 홈런을 날리고 기뻐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난 아직도 힘들고 외로울 때면 2018년 포스트시즌을 본다.

어린 시절, 나는 무엇 하나 끝까지 이루어내지 못하는 아이였다. 모든 일에 흥미가 많고 배우는 것도 좋아했지만, 그 어떤 것도 미친 듯이 좋아하진 않았다. 조금만 어려움에 봉착해도, 피하고 포기해 버리는 아이였다. 그렇게 하다가 그만둔 것들이 너무 많은 어린 시절이었다.

야구도 그랬다. 어렸을 때 사촌 형들과 문학경기장에 가도, 꼭 7회만 되면 집에 가자고 징징대곤 했다. 게다가 팀이 조금만 위기에 처하거나 지고 있으면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어쩌다 끝까지 야구를 본 날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2007∼2010년, 그 시절 내 머릿속 에스케이(SK·현 SSG랜더스)는 이기는 게 당연한 팀이었던지라 이겨도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야구장에서 나는, 그저 떡볶이나 치킨 생각뿐이었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는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에스케이는 점차 강팀의 모습을 잃어갔다. 어느 순간, 에스케이는 와일드카드 경쟁을 하는 중위권 팀이 됐다. 그 시절 나는 야구를 잊고 살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어쩌다 친구들이 삼성, 두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중위권 팀을 응원하는 게 부끄러워서, 혹은 인천 사람이라고 에스케이 응원하는 게 뭔가 세련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삼성 팬인 양, 두산 팬인 양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런 내가 에스케이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2018년 포스트시즌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하고 있었다. 그때도 난 조금도 자라지 못해서, 아쉬워서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재수를 택했다. 그런 생각으로 공부를 다시 한다고, 1년 전보다 더 잘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수능은 다가오는데 작년하고 성적이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도망가고만 싶었다.

그래서 재수학원도 안 가고 열심히 도망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집에서 동생과 야구를 보게 됐는데, 그게 플레이오프 5차전이었다. 6회부터 보기 시작한 야구는 에스케이가 크게 이기고 있었다. 8회가 끝나고 9-4로 스코어가 벌어졌을 때,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경기를 보고 있던 에스케이 팬들은 한국시리즈 전력 구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맞상대인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히어로즈는 메릴 켈리를 난타하고 동점을 만들더니, 기어코 연장에서 역전을 만들었다. 나는 또다시 끝났다고 생각했다. 다 이긴 걸 져버린 에스케이 선수들을 원망하려던 찰나, 김강민 선수가 동점 홈런을 때렸고 한동민(한유섬) 선수가 역전 끝내기 홈런을 연달아 터뜨리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진짜로 끝나야, 끝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승리를 의심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이 있었기에 경기를 다시 뒤집을 수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그 타석에 들어섰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빨리 아웃되고 싶어서 대충 휘두르다 나왔을 것이다. 고작 한 점인데, 이미 패배한 사람처럼 포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에스케이(SK) 와이번스 선수들이 2018년 11월12일 밤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13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5-4 승리해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가운데가 이날 승리를 마무리한 김광현. 연합뉴스
에스케이(SK) 와이번스 선수들이 2018년 11월12일 밤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13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5-4 승리해 우승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가운데가 이날 승리를 마무리한 김광현. 연합뉴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한 점처럼.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일찍 포기해 버린 게 아닐까. ‘수능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공부해서 뭐해.’ 내 마음속에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그 장면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혼신을 다해 방망이를 휘두르던 그 모습을.

그렇게 수능을 치렀다. 다이나믹한 점수 향상은 없었다. 그러나 난 그때 가장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서울에서 4년제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나는 보답이라도 하듯 에스케이의 2019년 거의 모든 홈경기를 따라다녔다. 응원지정석에서 열심히 목청 높여 응원하고 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었고, 8회가 넘어가며 부르는 ‘연안부두’ 노래는 함께 응원하는 사람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하나가 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2019년 플레이오프. 막판에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 에스케이 선수들의 열정을 믿고 플레이오프 3차전 직관을 갔다. 작년과 똑같은 상대. 하지만 에스케이는 참패(1-10)를 당했다. 그다음 해에는 9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냈고, 2021년엔 팀 명(SSG 랜더스)도 바뀌고 시즌 마지막 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하는 악재를 겪었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2019년 10월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에스케이(SK) 와이번스와 3차전에서 3회말 2타점 2루타로 선취점을 뽑고 있다. 연합뉴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2019년 10월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에스케이(SK) 와이번스와 3차전에서 3회말 2타점 2루타로 선취점을 뽑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도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기적은 매번 일어나지 않는다. 항상 역전하고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희박한 확률의 기적을 이루어내기 위해 자신을 믿고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2018년의 에스케이를 기억한다. 그리고 2022년과 앞으로의 에스에스지를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잘할 때도 못할 때도 있지만 기적을 믿고 열심히 달려가는 나의 인생을 사랑한다.

아직도 성장하는 젊은 청년(인천 계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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