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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야구는 늪이다,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19]

등록 2022-08-02 11:50수정 2022-08-03 02:36

김병석씨가 아들과 함께 지난달 30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 앞에서 기아 타이거즈 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의 부상 복귀를 빌며 그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김병석씨가 아들과 함께 지난달 30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 앞에서 기아 타이거즈 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의 부상 복귀를 빌며 그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 장면 1

“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흑백 티브이(TV) 화면이 그대로 멈췄다. 발목은 완전히 꺾여 종아리로 향해 있었다.

선린상고 슈퍼스타 박노준. 투수면 투수, 타자면 타자, 야수면 야수까지.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란 말이 1980년대에 적용된다면 그 이전엔 당연히 “야구는 박노준”이라 할 만큼 초특급을 넘어 외계인이라 의심받던 박노준.

그는 그렇게 홈 플레이트와 함께 꺾인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초등학생인 나는 화면으로 보면서도 저 정도라면 다시 걸을 수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흑백 화면 속 그 장면은 뇌리에 강력하게 남아, 내 야구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고교야구 스타였던 박노준. 연합뉴스
고교야구 스타였던 박노준. 연합뉴스

# 장면 2

“9회말 투아웃. 풀카운트, 투수 던졌습니다.”

‘정규 방송 관계로 중계를 마칩니다.’

“뚜!뚜!뚯!.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 데스크입니다.”

목포라는 시골(?)에서 야구 생중계는 신문물이었다. 지금처럼 전 경기 중계가 아니었기에 야구 중계가 있는 날은 더더욱 소중했다. 야구는 서울, 부산, 광주처럼 아주 큰 도시에서 열리는 것이었고, 야구를 현장에서 보는 일은 아주 잘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간접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야구 중계.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투수가 던지는 마지막이 공이 타자를 향하는 그 순간….

‘정규 방송 관계로 중계를 마칩니다’라는 매몰찬 자막. 화면에서는 뚜!뚜!뚯! 소리와 함께 밤 9시를 가리키는 시계. 그리고 뉴스 오프닝 멘트….

그 마지막 공은 삼진일까? 안타일까? 홈런일까? 밤 9시 뉴스가 끝난 뒤 스포츠 뉴스에서 알게 될 경기 결과를 기다리는데 그 조마조마함이란.

“아악~~~~안돼~~~~1분만, 아니 30초만, 아니 마지막 공 하나만!”

그 아쉬움은 나를 지금까지 야구팬으로 있게 만든 최고의 ‘밀당’(밀고 당기기)이었다.

인터넷 중계 등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팬들은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방송을 마친다’는 문구가 나올까 노심초사하며 야구를 봐야 했다. SBS 중계화면 갈무리
인터넷 중계 등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팬들은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방송을 마친다’는 문구가 나올까 노심초사하며 야구를 봐야 했다. SBS 중계화면 갈무리

# 장면 3

야구장을 제집 드나들 듯 다닌 것은 광주의 대학, 그것도 야구장에서 가까운 전남대학교에 다니면서였다. 그동안의 한을 풀고자 틈만 나면 야구장으로 출근(?)했다. 화면으로만 보던 야구 선수를 눈앞에서 보고, 환호하고, 소리 지르고, 먹고, 마시고…. 야구장은 해방구였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삼성과 해태(현 KIA)의 무등경기장 경기. 엎치락뒤치락하던 경기는 9회말에 대타, 대주자를 모두 소모하여 우여곡절 끝에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10회초 해태 선수들은 수비를 위해 자리했다. 선수를 다 소모한 탓에 포수를 누가 볼 것인지 궁금했다.

전광판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경악했다. 홈 플레이트에는 ‘야구 천재’ 이종범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전광판에 2번(포지션 번호) 이종범이 뜬 순간 관중석은 술렁거렸다. 이종범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투수의 연습투구를 받았고, 몸풀기를 위해 2루수에게 공을 던졌다.

순간 공은 2루수를 훌쩍 넘어 중견수가 받아야 할 수준으로 날아가 버렸다. 관중석에서는 폭소가 터졌고 “이종범”을 연호하며 큰 박수가 나왔다. 연습 투구였기 망정이지 실전이었다면 주자에게 한 베이스를 헌납할 수 있었다.

삼성 첫 주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안타였는지 볼넷이었는지 출루했다. 승부수를 걸기 위해 삼성은 신인 선수 중 발이 빠른 김재걸 선수를 대주자로 내세웠다. 발 빠른 대주자의 등장에 관중들은 긴장하며 투수의 투구를 기다렸다. 투수가 1구를 던진 순간 삼성의 기대대로 김재걸은 2루를 훔치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갔다. 다분히 해태의 허약한(?) 포수 이종범을 고려한 작전이었으리라.

순간 ‘포수 이종범’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2루로 송구했고, 깔끔하게 김재걸을 잡아냈다. 관중석의 환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종범이 왜 야구 천재로 불리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날 경기 결과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등경기장에서 보았던 수많은 경기 중 유독 이 경기의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했는데, 어찌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종범(당시 해태 타이거즈)이 1996년 8월23일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9회말 포수를 맡아 경기를 승리로 이끈 뒤 기뻐하고 있다. 이종범은 당시 때때로 포수 역할을 소화했다. KBS 중계화면 갈무리
이종범(당시 해태 타이거즈)이 1996년 8월23일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9회말 포수를 맡아 경기를 승리로 이끈 뒤 기뻐하고 있다. 이종범은 당시 때때로 포수 역할을 소화했다. KBS 중계화면 갈무리

# 장면 4

숱한 우승을 맛보게 해주었던 무등경기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드디어 메이저리그급 구장 기아챔피언스필드가 2014년 문을 열었다. 챔피언스필드에서의 첫 경기를 보기 위해 아저씨가 된 소년은 아이들을 데리고 목포에서 광주로 향했다.

처음 가본 챔피언스필드는 신세계였다. 잠실야구장에서 처음 야구를 보던 날 ‘이야∼ 이게 야구장이구나. 무등은 야구장도 아니었어’라고 했던 심경을 똑같이 느끼게 됐다. ‘이야∼ 이게 야구장이구나, 잠실은 그냥 동네 운동장이었어.’

그때 우연히 지나가던 방송국 리포터가 인터뷰가 가능한지 물었다. 주저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연습이나 리허설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했는데 “오케이.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 이대로 한 번에 끝?’ “저기 방금 한 건 연습이고 다시 제대로 해야 하지 않나요?” “방금 잘하셨어요. 그대로 방송 나갈 겁니다. 성함이?” 이렇게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 첫 경기의 인터뷰이로 전국에 얼굴을 남기게 됐다. 전국에 얼굴이 나갔는데 어찌 야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김병석씨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가 처음 선보인 2014년 3월15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MBC 뉴스화면 갈무리
김병석씨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가 처음 선보인 2014년 3월15일 인터뷰를 하고 있다. MBC 뉴스화면 갈무리

누군가는 말한다. ‘그깟 공놀이가 뭐 그리 재미있냐?’고. 하지만 나는 반문하고 싶다. 평생 절대로 잊히지 않을 만큼 뇌리에 박힌 기억이 과연 몇 가지나 되는지를. 무언가에 미치게 하는 기억을 가졌는지를. 야구는 그깟 공놀이가 아니다. 야구는 늪이다. 평생 빠져나올 수 없는….

김병석(전남 목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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