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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마흔이 되던 해, 직접 방망이를 들었다[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12]

등록 2022-06-14 10:23수정 2022-06-15 02:35

최현수씨가 속한 엔씨(NC) 다이노스 여자 야구단 선수들이 12일 서울 강남구 탄천 일대에서 훈련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엔씨 다이노스 여자 야구단 제공
최현수씨가 속한 엔씨(NC) 다이노스 여자 야구단 선수들이 12일 서울 강남구 탄천 일대에서 훈련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엔씨 다이노스 여자 야구단 제공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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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어릴 적이었다. 프로야구 어린이회원 모집 포스터를 봤다. 당시 오비(OB) 베어스는 신입 회원에게 물량 공세를 펴고 있었다. 모자와 가방, 그리고 점퍼까지. 어린 눈에는 무척이나 ‘폼’나 보였다. 반면 엠비시(MBC) 청룡은 특별한 선물이 없었다. 엄마는 이왕 어린이회원을 할 거라면 선물도 주는 오비가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이상하게 싫었다. 엄마에겐 “나는 용띠니까 청룡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실은 오비는 그냥 ‘내 팀’이 아닌 것 같았다.

그게 이 질긴 운명의 시작이었나 보다. 28년째 우승 문턱을 갈 듯 말 듯…. 주변 오비 팬들에게 늘 놀림 받으면서도, 한 번도 팀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 후드티 안에서 몰래 이어폰으로 듣던 라디오 야구 중계는 늘 설레고 흥분됐다. 그 시절 그렇게 우승한 뒤, 여전히 팬들을 애태우고 있는 요즘 엘지(LG) 트윈스…. 어쨌든, 프로야구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2017년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최현수 씨. 본인 제공
2017년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최현수 씨. 본인 제공
마흔살이 되던 해, 버킷리스트를 쓰면서 ‘보는 야구’를 넘어 ‘하는 야구’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여자 야구팀을 물색했고, 엘지 야구단에서 아마추어 야구와 여자 야구를 오랜 기간 후원했으며 전국대회 및 세계대회도 유치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여자 야구팀만 전국에 45개가 넘고, 야구를 하는 인원이 1000명이나 된다니…. 무척이나 놀랐다.

그 ‘신세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서울에 있는 여러 팀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엔씨(NC) 다이노스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다이노스 여자 야구단이었다. 나는 그렇게 ‘볼 좀 치고 던지는’ 1000여명의 사람에 속하게 됐다. 이제 내가 직접 방망이를 든다니!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최현수씨. 본인 제공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최현수씨. 본인 제공
야구를 보기만 하다가 직접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야구를 하면서 가장 달라진 건, 야구 중계를 볼 때 태도다. 이제는 수비 실책이 나와도 예전처럼 격하게 반응을 할 수가 없다. 직접 해보니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예전엔 ‘저걸 왜 못 잡지?’ 생각했다면, 이제는 ‘저건 정말 어려운 걸 잡은 거다!’라는 감탄이 나온다.

프로야구만큼이나, 여자 야구도 매력적이다. 투수 마운드부터 포수까지 거리가 18.44m로 프로 무대와 같다. 전국대회, 친선경기, 자체 청백전도 한다. 선수 연령대도 다양하다. 각자 경험과 경력은 다르지만, 야구장에선 모두가 동등해지는 것도 좋다.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을 때도 굉장히 집중해야 하는데, 좋은 플레이를 펼치면 그날은 다들 한톤씩 업이 돼서 집에 가거나 뒤풀이를 한다. 골프나 테니스 등 다른 스포츠에선 느끼기 힘든 단체 운동의 매력이다.

최현수씨가 2019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특별 시구를 한 김용수 전 엘지 코치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전 코치는 엘지 영구 결번 1호 선수로, 최씨는 그를 따라 다이노스 야구단에서 41번을 달았다. 본인 제공
최현수씨가 2019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특별 시구를 한 김용수 전 엘지 코치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전 코치는 엘지 영구 결번 1호 선수로, 최씨는 그를 따라 다이노스 야구단에서 41번을 달았다. 본인 제공
아직 야구장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서 여자 선수들에겐 좋은 구장을 쓸 기회가 잘 돌아오진 않는다. 그래도 용기를 내 그라운드에 뛰어든 덕에, 주말은 늘 야구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프로야구가 아니었다면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야구를 보게 되고, 그 덕에 야구를 시작하게 되고….

여자 야구에선 국가대표 김라경 선수가 가장 유명하지만, 나처럼 늦은 나이에 야구를 시작한 사람도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선 딱히 특별한 운동을 한 적이 없는 나도, 다른 야구 선수들처럼 진짜 야구를 한다. 야구를 보면서 나도 한 번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이곳에선 실현할 수 있다. 타격 폼도 따라 해보고, 수비 자세도 조정해보고.

이렇게 사람들이 ‘나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언젠간 여자 야구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나도 매스컴에서 이 사실을 접한 뒤, 야구에 대한 꿈을 마음속에 품다가 몇 년 뒤에야 내 손에 방망이를 쥐었으니까. 참, 이번 주말(18일)부턴 여자 야구 페스티벌도 열린다. 누구나 와서 야구를 체험해볼 기회다. 여자 야구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관심과 후원을 받고, 어린 친구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시즌 시작을 앞두고 각오를 다지고 있는 최현수씨와 엔씨 다이노스 야구단 선수들. 본인 제공
시즌 시작을 앞두고 각오를 다지고 있는 최현수씨와 엔씨 다이노스 야구단 선수들. 본인 제공
그리고 함께 야구를 하는 우리 선수들. 단단한 공 때문에 다치는 경우도 있는데, 항상 조심하고 부상 없이 오래오래 같이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 모든 선수와 팀이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오래오래 야구 경기를 할 수 있기를.

야구처럼 인간적인 운동이 또 있을까? 감독과 선수가 같은 옷을 입고 경기에 임하고, 공이 아닌 사람이 들어와야 득점이 인정되는 구기 종목은 야구밖엔 없다. 프로야구가 개막했듯, 여자 야구도 리그를 시작하고 전국대회를 연다. 그렇게 또 심장이 마구 뛴다∼.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그깟 야구가 뭐라고.

최현수(서울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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