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박승욱(왼쪽 두 번째)이 11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엔씨 다이노스와 경기에서 9회말 2사 1, 3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뒤 환호하고 있다. 롯데의 6-5 승. 부산/연합뉴스
“솔직히 작년에는 화가 나는데도 그냥 야구가 좋아서 야구장엘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롯데 야구’를 보는 재미로 야구장에 옵니다. 올해는 마, 가을야구를 한다는 확신이 듭니다!”
롯데 자이언츠와 엔씨(NC) 다이노스의 경기가 열린 지난 10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만난 이학근(68)씨는 요즘 야구장에 올 때마다 “신이 난다”고 했다. 프로야구 출범(1982년) 때부터 줄곧 시즌권을 구매할 정도로 롯데 ‘광팬’이라는 그가 보기에 올 시즌 롯데는 “투타에서 훨씬 짜임새가 있는 팀”이 됐다. 그가 5년 만의 가을야구를 기대하는 이유다.
사실 개막 전 롯데에 대한 전망은 좋지 않았다. 앞서
<한겨레>는 KBO리그 10개 구단에 대해 공격력, 수비력, 투수력, 조직력, 지도력 5개 항목을 나눠 각각 5점 만점으로 방송 3사 해설위원 6명의 점수를 받아 평균을 냈는데 당시 롯데는 3.31점을 받아 한화 이글스(3.06점)에 소폭 앞선 9위를 차지했다. 10개 팀 가운데 ‘2약’으로 꼽힌 셈이다.
하지만 롯데는 올 시즌 전문가 예측을 보란 듯이 깨뜨리며 당당하게 상위권 경쟁을 하고 있다. 특히 그간 젊은 선수 육성을 중심으로 팀을 개편한 성과가 올해 들어 성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시즌 개막 전 롯데가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고 예상했던 박용택 <케이비에스엔>(KBSN) 해설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대호 같은 베테랑과 신예들이 조화를 이루며, 롯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롯데 자이언츠 한동희가 지난달 2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서 5회초 솔로포를 터뜨린 뒤 더그아웃에서 기뻐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초반 돌풍의 주인공은 ‘리틀 이대호’ 한동희(23)다. 데뷔 5년 차 한동희는 올 시즌 폭발적인 활약을 펼치며 KBO리그 4월 최고의 선수(MVP)로 꼽히는 등 기량을 만개하고 있다. 4월 한 달 동안 24경기에 나선 한동희는 타율 1위(0.427), 장타율 1위(0.764), 출루율 공동 1위(0.485), 홈런 1위(7개), OPS 1위(1.249), WAR 타자 부문 1위(2.16), 안타 2위(38개), 타점 2위(22점)를 기록했다.
마운드도 단단하다. 11일 현재 다승 공동 1위(5승)에 오른 세 명 가운데 두 명이 롯데 선수일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먼저 외국인 투수 찰리 반즈(27)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간 이어졌던 외국인 투수 갈증을 씻고 있다. 반즈는 4월 6경기에 등판해 41⅓이닝을 던지며 다승 1위(5승), 탈삼진 1위(45개), WAR 투수 부문 1위(2.05), 평균자책점 2위(0.65)를 기록했다.
롯데 자이언츠 박세웅이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엔씨 다이노스와 경기에서 6회를 무실점으로 투구한 뒤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안경 에이스’ 박세웅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 2위(1.21)를 달리고 있고, 10일 안방에서 열린
엔씨 다이노스와 경기에선 5회초 상대 타자 3명을 공 9개로 모두 삼진 아웃시키며 롯데 구단 최초로 ‘무결점 이닝’ 역사도 썼다. 래리 서튼 롯데 감독도 “박세웅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즐겁다”라며 만족감을 표할 정도다.
올 시즌이 은퇴를 앞둔 이대호(40)의 마지막 불꽃이라는 점도 선수들을 북돋는다. 이대호의 소원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물하겠다는 열망으로 똘똘 뭉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5월 들어 4연패를 기록하는 동안에도 팀 분위기는 건재했다. 박세웅은 10일 선발 투수로 나와 엔씨를 잡아내며 연패를 끊은 뒤 “(전)준우 형이 주장 자리에서 활기를 불어넣고, 후배들은 잘 따라갔다. 오히려 팀이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했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1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엔씨 다이노스와 경기에서 1회말 1사 1, 2루에서 1타점 적시타를 날리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팬들도 올 시즌 롯데에선 전에 없던 전투 의지가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박재승(51)씨는 “아무래도 이대호의 마지막 시즌이다 보니 선수들이 ‘으쌰으쌰’ 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선수단의 열정을 느낀 팬들은 지난 6∼7일 이틀 연속 사직구장 만석을 채우며 힘을 보탰다. 사직구장이 관중으로 가득 찬 건 2019년 5월 이후 3년 만이다. 올 시즌 롯데의 홈경기 평균 관중(9714명)은 에스에스지(SSG) 랜더스(1만3740명), 엘지(LG) 트윈스(1만1284명)에 이어 리그 전체 3위에 올라 있다.
물론 올 시즌 롯데에도 고민거리는 있다. 특히 손아섭(34)이 엔씨로 이적하면서 생긴 우익수 공백이 빈틈으로 꼽힌다.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던 고승민, 조세진, 신용수 장두성이 모두 2군으로 이동하며 고배를 마셨고, 1군에 남아있는 추재현의 활약도 아직은 미미하다. 반즈를 제외한 외국인 선수가 기대 이하인 점도 문제다. 박용택 해설위원은 “반즈는 잘하고 있지만, 투수 (글렌) 스파크맨과 타자 (DJ) 피터스가 기대만큼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10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엔씨 다이노스와 경기가 끝난 뒤 롯데 최준용의 사인을 받고 있다. 부산/이준희 기자
봄에는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갈수록 성적이 떨어진다고 해서 ‘봄데’(봄+롯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은 롯데다. 하지만 올 시즌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선수도, 팬도 느낀다.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 많은 선수가 모여있다. 팬들이 응원해주시는 만큼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하겠다”(박세웅)는 에이스의 바람처럼, 올 시즌 롯데의 봄이 가을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 선수들과 팬들의 뜨거운 열기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부산/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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