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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야구·MLB

[나와 너의 야구 이야기 5] 프로야구는 나의 한국 현대사

등록 2022-04-26 10:59수정 2022-04-26 11:06

최재식씨가 2016년 10월29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폴리스 라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최재식씨가 2016년 10월29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폴리스 라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한겨레〉 스포츠팀은 나와 너, 우리들의 야구 이야기를 전합니다. 당신의 ‘찐’한 야구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사연 보낼 곳>

hanibaseball@gmail.com 혹은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6 한겨레신문사 6층 스포츠팀.

서울에 살던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팬이었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경남 김해 진영읍으로 전학을 갔다. 롯데 자이언츠의 아성에서 항상 ‘갈매기’들의 핍박(?)에 시달렸다. 방과 후 친구들과 즐겁게 동네야구를 하다가도,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면 전날 롯데가 삼성에 패했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타박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야구 아홉 번째 구단 창단에 엔씨(NC)소프트가 뛰어든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홉 번째 심장’은 옆 동네 창원에 둥지를 틀었다. 여론은 양분됐다.

“그래도 롯데 아이가?”

“롯데가 뭐 해준 게 있다고. 마, 그냥 엔씨로 가자!”

한 구단 단장의 ‘리그 수준’ 발언에 양쪽의 갈등은 격해졌다. 전통을 고수하던 이들과 새바람에 동참한 이들은 서로 ‘엔씨 다이노스가 1군 가면(오면) 두고 보자’며 날을 갈았다.

나(옛 삼성 팬)와 친한 친구들(옛 롯데 팬)은 엔씨 지지 세력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같이 야구를 하고, 식당을 하는 친구네 집으로 가 돼지국밥을 먹으며 또 야구를 봤다. 우리는 그렇게 공룡(다이노스) 식구가 됐다. 시험 기간에도 퓨처스리그 경기를 보러 마산구장으로 향했고, 차화준 선수가 우리에게 날려준 야구공에 방방 뛰며 기뻐했고, 이재학 선수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얼른 뛰어가 수줍은 목소리로 사인볼을 청했다. 그리고 엔씨는 2012시즌 퓨처스 남부리그 우승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다.

최재식(오른쪽)씨가 2017년 경남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친구와 함께 엔씨 다이노스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본인 제공
최재식(오른쪽)씨가 2017년 경남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친구와 함께 엔씨 다이노스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본인 제공

2013년, 드디어 엔씨가 1군에 참가했다. 그리고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201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된 순간, 나와 친구들은 서로 말하지 않고도 알아서 한국시리즈 티켓 예매를 준비하고 1차전에 맞춰 모든 일정을 조정했다.

우리는 당연히(?) 엔씨가 한국시리즈를 제패할 것을 믿고 1차전이 열리는 잠실구장으로 향했다. 2016년 한국시리즈 1차전은 10월29일 오후 2시에 시작됐다. 경기는 투수전 양상이었다. 양 팀 투수들의 호투와 야수들의 호수비로 경기는 어느덧 연장 11회. 방문팀 엔씨는 초공 때 득점하지 못했다. 그리고 11회말 터진 오재일의 희생뜬공으로 경기는 0-1,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예상치 못한 패배에 우리는 슬픔을 넘어 분노에 휩싸였다. 그러나 여기는 잉글랜드가 아닌 한국이었고, 이 경기는 프리미어리그(EPL)가 아니라 KBO리그였다. 훌리건이 될 수 없었던 우리는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두산 베어스 오재일(오른쪽)이 2016년 10월2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KBO리그 한국시리즈 1차전 엔씨 다이노스와 경기에서 연장 11회말 끝내기 희생뜬공을 날리자 동료들이 달려와 같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산 베어스 오재일(오른쪽)이 2016년 10월2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KBO리그 한국시리즈 1차전 엔씨 다이노스와 경기에서 연장 11회말 끝내기 희생뜬공을 날리자 동료들이 달려와 같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 시기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한 전 국민적 분노가 차오르고 있던 시기였다. 모든 언론이 박근혜의 비리를 연달아 보도하고 있었고, 노동자·학생 등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 나는 며칠 전 보았던 짤막한 뉴스가 생각났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10월29일 저녁 6시 청계광장”

우리는 순간적으로 이 자리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면 패배의 분노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패배의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니던 우리는 당장 2호선을 타고 시청역으로 향했다. 집회 대오에 합류한 우리는 목놓아 외쳤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우리는 엔씨 패배로 인한 울분과 상대 팀이었던 두산을 향한 원망을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해소했다. 그래도 뭔가 뜻이 있어서 간 것 아니겠냐고? 물론 대다수 국민처럼 우리도 당시 정권의 비리에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 현장에 함께한 건 순전히 우리 팀이 패배해서였던 것 같다. 집회가 마무리되고 밥을 먹으며 한 이야기 역시 ‘박근혜가 왜 퇴진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엔씨가 왜 졌는지’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현장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른 덕분인지, 엔씨가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음에도 우리는 나름대로 빠르게 패배의 충격을 수습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땐 정말 몰랐다. 3만명이 모였던 그 현장에 30만명, 100만명, 200만명이 모여들어 결국 부패한 정권을 탄핵할지.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기도 하다. 응원하는 야구 팀의 패배가 우리를 그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 현대사의 주요 순간에 있던 내가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난다.

벌써 그날도 6년여 전이다. 그 사이 엔씨는 결국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작년 부침을 겪었고 올해 초반도 힘들지만 내 팀 엔씨는 다시 강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엔씨 다이노스, “거침없이 가자!”

제주도 여행 중인 최재식씨. 본인 제공
제주도 여행 중인 최재식씨. 본인 제공

덧붙이기 1.

80년대말∼90년대초, 마산구장에서 야구 경기가 끝나면, ‘마산아재’들이 곧바로 민주화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 대오로 합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 마산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엔씨의 패배는, 우리를 향해 박근혜 퇴진에 힘을 보태라는 일종의 ‘계시’였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가 곧 시작된다. 부디 새 대통령이 각계각층 시민들이 싸워서 만든 이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잘 되새겼으면 한다.

덧붙이기 2.

같이 야구를 보고 청계광장으로 향했던 한 친구는 다니던 학교가 있던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와서 거리로 나섰다. 그 이후로도 주말마다 서울에 와 함께 촛불을 들었다. 덕분에 교통비가 많이 나왔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던 나는 다행히 교통비는 적게 들었지만, 내 자취방을 촛불집회에 온 친구들에게 내주어야 했다.

최재식(서울 동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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