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현씨가 2018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다가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야구가 좋았다. 장애인 시설에 살던 시절, 야구는 나에게 자유를 느끼게 해줬다. 홈런이 터졌다는 라디오 방송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야구공이 되어 시설 너머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갈 듯했다. 하지만 직접 야구를 볼 순 없었다. 사실상 외출이 불가능한 데다 티브이(TV)조차 없었던 시설에선, 야구를 그저 귀로 듣고 그라운드를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 당시 내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입소자가 티브이를 갖고 시설에 들어왔다. 이렇게 기쁠 수가. 드디어 눈으로 야구를 볼 수 있는 날이 왔다. 야구 중계를 하는 날이면, 여러 명이 그 사람 방에 모여 함께 야구 경기를 봤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야 할 때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끝까지 시청하고 싶었는데…. 라디오를 켜고 밥알을 씹으며, 나는 방금 전까지 보던 야구를 곱씹었다.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특히 선동열과 이종범을 좋아했다. 10년간 해태는 상위권을 유지했고, 그들은 내 자랑이 됐다. 시설에서 해태와 다른 팀 중에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하곤 했는데, 매번 해태가 이겼기 때문에 나는 항상 승자였다. 진 쪽에선 과자랑 음료수를 샀는데, 그 시절 시설에선 정말 특별한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승리의 날이 영원하진 않았다. 해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 잘하는 선수들이 줄줄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나는 그만 타이거즈에 흥미를 잃었다. 결국 새롭게 응원할 팀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2001년 기적 같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냈던 두산 베어스가 내 새로운 자랑이 됐다. 그저 티브이 속 영웅들이었지만 말이다.
황인현씨가 생활했던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날인 2008년 4월20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결의대회’에서 사회복지시설 비리 척결 등을 요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처음 직접 야구를 본 것은, 그 후로도 10년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08년 시설 운영 재단 비리 문제로 장애인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09년엔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 투쟁을 시작했다. 비록 생계 문제로 바로 시설에서 나오진 못했지만, 이때부터 조금씩 자유를 얻었다. 그렇게 2012년, 드디어 처음으로 야구를 보러 갔다. 꿈에서만 그리고 그리던 야구장…. 1990년, 21살 나이로 시설에 들어간 지 22년 만이었다.
완전히 시설에서 나와 야구를 보게 된 건, 두산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던 2015년이었다. 나는 그렇게 듣는 야구, 보는 야구가 아니라 진짜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다른 관중들과 함께 큰 목소리로 두산을 응원할 수 있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으면 중간에 경기장을 나가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나 끝까지 지켜보며 두산을 응원했다. 내겐 그 시간이 예부터 간절히 바랐던 소중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황인현(오른쪽)씨가 2018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동료들과 치킨을 먹으며 야구를 보고 있다. 본인 제공
주로 인천 문학경기장을 갔고, 서울 잠실야구장도 여러 차례 갔다. 가장 좋았던 곳은 서울 고척스카이돔이다. 시설도 제일 멋졌고, 경기장에 뚜껑도 있었다. 입장료는 다른 곳에 비해 비쌌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다. 무엇보다 장애인석이 다른 곳에 비해 넓어, 구경할 때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야구장을 한 번 갈 때마다 4만원 정도가 들었는데, 나는 돈을 아끼고 아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야구를 보러 갔다.
아쉽게도 최근에는 야구장에 가지 못한다. 코로나19 문제도 있지만, 2018년 서울에서 경기도 김포로 집을 옮겼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타고 김포에서 잠실까지 가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대신 지금은 티브이로 활동보조사와 함께 야구를 보며 내기를 하곤 한다. 나는 두산 팬, 활동보조사는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팬이다. 이기고 지는 결과에 따라 가끔 서로 서먹해지기도 하지만, 야구가 개막해 지금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야구는 내 삶의 활력소다. 내가 자립 전부터 좋아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나도 부산, 광주, 대구, 창원, 대전에 있는 다른 야구장을 가보고 싶다. 귀로 듣던 야구가 보는 야구가 되고, 보는 야구가 즐기는 야구가 되었듯이 언젠가는 휠체어를 타고 전국 모든 야구장에 쌩쌩 달려갈 날이 오리라 믿는다.
황인현(경기 김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