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 베어스 모자를 쓰고 있지만 ‘푸른 피의 직장인’은 사실 삼성 라이온즈 ‘찐’팬이다. 베어스 모자는 친척의 선물이었다고 한다. 독자의 허락을 받고 얼굴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았다. 본인 제공
“어떻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How can you not to be romantic about Baseball?)”
영화 <머니볼> 속 빌리 빈(브래드 피트)이 이 대사를 하는 장면을 가끔 찾아본다. 그럴 때마다 지나간 시간을 더듬는다. 1988년 국민(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집 주말 오후 TV 채널은 대구구장에 고정됐다. 해설자와 캐스터의 말소리 사이로 엄마의 상기된 목소리가 섞여들 때가 많았다.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 공장을 다니며 받은 월급으로 대구구장을 자주 갔다며 털어놓는 ‘리즈 시절’ 이야기는 그가 세상을 떠나도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엄마의 이야기와 함께 야구에, 그의 고향인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에 호감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2002년 11월10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말 3점 홈런을 날린 이승엽이 눈물을 흘리며 코치진과 얼싸안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를 ‘찐하게’ 사랑하게 된 것은 1999년이다. ‘타의’로 머리를 빡빡 밀고 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죽이던 고등학교 3학년생에게 이어폰에 들려오는 라디오 야구 중계는 현실을 잊는 피난처였다. 이승엽이 8월3일 43개째 홈런을 치며 한국 프로야구 시즌 최다 홈런신기록을 세웠고, 9월30일에는 53호를 쏘아 올렸다. 그가 홈런을 칠 때마다 조용한 독서실에서 속으로 탄성을 삼켰다. 대학생이던 2002년 11월10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마해영이 백투백 홈런을 치고 구단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 결정되던 순간 TV 앞에서 나는 눈물, 콧물을 다 쏟아냈다.
그런데 2016년부터 야구를 지켜보는 게 조금씩 괴롭기 시작했다. 2011~2014년 한국시리즈 4연패를 기록하며 왕조시대를 열었던 라이온즈는 2016년 9위로 떨어지며 몇 년간 긴 암흑기에 들어갔다. 성적 하락은 프로야구팬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숙명인데, 라이온즈의 몰락을 보며 자꾸 ‘9년 차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된 게 문제였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으면 기뻐하듯, 회사 합격통보에 ‘뭐든 할 수 있다’며 신이 났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를 지나며 나는 ‘스타’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했다. 시속 150㎞ 강속구를 팡팡 던져대거나 기상천외한 궤적의 변화구를 던지는 훌륭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열등감에, 자괴감에 시달렸다. 강속구도, 타자의 헛스윙을 끌어낼 확실한 변화구도 없는 나는 매일 마운드에 올라 동기부여 없이 꾸역꾸역 공을 던졌다. 라이온즈 투수들이 매일 상대 타자들에게 무너지는 모습도 지켜보기 힘들었다.
2021시즌 뒤 은퇴한 삼성 임현준. 그는 프로 생활 중 왼손 오버핸드에서 왼손 사이드암으로 변신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원래 내 공이 빠르지 않았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삼성 라이온즈 임현준)
라이온즈가 지는 날이 많아지니, 에이스 투수와 강타자에게 고정된 시선이 평범하거나 좀 부족한 선수들로 돌아갔다. 그때 눈에 들어온 이가 라이온즈 왼손 투수 임현준이었다. 야구에 대한 마음을 놓지 않게 된 건 그 덕분이다. 시속 130㎞ 초반의 느린 구속으로 프로 데뷔 뒤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1·2군을 왔다 갔다 한 그는 2016년부터 야구선수로서 일생 일단의 결단을 한다. 10년 넘게 온몸의 근육과 마음에 각인돼있던 오버핸드 투구폼을 버리고 왼손 사이드암 투수로 변화를 꾀했다. KBO리그에 왼손 사이드암 투수가 거의 없다는 것에 착안해, 타자들이 생소해 하는 궤적의 공을 던지겠다고 한 것이다. 말이 쉽지, 똑같은 동작을 십수년간 매일 반복하는 운동선수에게 자신의 폼을 180도 바꾸는 선택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성공했다. 느린 구속 탓에 에이스는 될 수 없었지만, 2017~2020년 1군 불펜 투수로 자기 몫을 했다. 그의 궤적을 따라가니 프로선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느린 구속을 가졌지만 정교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한동안 마운드를 평정한 두산 베어스의 왼손 투수 유희관도 눈에 들어왔다. 역시 느린 공으로 1990년대 라이온즈 선발 마운드를 지켰던 성준도 떠올랐다. 성준, 임현준, 유희관, 또 그리고 누군가…. 모두 각자의 마운드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해 씩씩하게 공을 던지고 있었다.
시속 130㎞대의 느리디느린 공으로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 연속 시즌 10승 이상을 거둔 좌완 투수 유희관. 연합뉴스
시속 140, 150㎞를 던지지도 못하는데 남들만 쳐다보면 뭐가 바뀔까. 나도 용기를 냈다. 임현준, 유희관의 노력에는 못 미쳤지만, 매일 1군에서 자기 몫을 하기 위해 이런저런 변화를 꾀해봤다. 그러다 보니 일터의 풍경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일터든 야구장이든 에이스나, 홈런 타자가 필요하지만 그들 뒤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팀이 굴러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누군가는 번트를 잘 대 다음 타자에게 기회를 연결하고, 어떤 이들은 빠른 발로 대주자 역할을 쏠쏠히 한다. 팬들이 주목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야구’는 모여서 ‘우리의 야구’가 되고 팀을 단단하게 만든다.
임현준, 유희관 모두 지난해 은퇴를 결정했다. 두 선수는 은퇴했지만 2020년에 데뷔한 리그 최단신(163cm)인 김지찬(라이온즈)은 거구들 사이에서 야무지게 공을 치고, 날쌔게 달린다. 시속 120㎞대의 느린 공이지만 몸을 잔뜩 숙인 잘 보기 힘든 투구폼으로 올해 시범경기에서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하는 노운현(키움 히어로즈)도 있다. 회사 내 김지찬, 노운현 같은 동료들을 보며 나는 오늘도 일터라는 마운드에 오른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마운드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버티는 게 중요하니까. 빌리 빈의 대사를 오늘도 되뇐다.
“어떻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푸른 피의 직장인(서울시 은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