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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누구를 위해 만들었을까

등록 2008-11-06 18:52수정 2008-11-07 10:42

간통죄, 누구를 위해 만들었을까
간통죄, 누구를 위해 만들었을까
[뉴스 쏙] 호기심 플러스
일제 때 하루걸러 1번꼴 간통기사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성에 더 가혹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는 탤런트 옥소리씨가 낸 간통죄 위헌소송에서 재판관 한 명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간통죄는 그 존폐 여부와 남녀차별 문제를 놓고 시행 이래 계속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뜨거운 이슈입니다. 간통죄 관련 주요 보도와 판결을 살펴보면 시대별 인식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와 법조계는 간통죄를 어떻게 봐왔을까요?

간통죄는 일본 형법을 본떠 1908년 시행됐습니다. 옥소리씨 같은 연예인은 돼야 신문을 장식하는 요즘과 달리 당시는 간통기사가 하루 걸러 신문에 실렸습니다. ‘소방수의 아내는 정조가 더욱 필요. 간부가 있으면 동네집에 불을 놓고 그 틈에 못된 짓’(1924년)이라는, 소방공무원 가족들이 보면 소스라칠 기사도 눈에 뜨입니다. ‘간통 했다고 화두로 낙형. 다른 남자와 관계하였다고 빨가벗기고 함부로 지지어’(1928년)란 기사처럼 당하는 것은 온통 여자들뿐이었습니다.

남녀평등이란 말 자체가 생소할 때니 일반 서민들이야 그랬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른바 남성 엘리트들이 보는 간통은 어땠을까요?

해방 뒤인 1949년 형법 제정을 준비하던 법전편찬위원회는 간통죄 존폐를 두고 머리를 싸맵니다. 선택지는 세 가지. 여자만 처벌하자, 남녀 다 처벌하자, 처벌하지 말고 도의에 부치자. 분위기는 남녀 모두 처벌하면 남자들이 너무 힘들다는 의견에 따라 간통죄를 폐지하자는 쪽으로 흘렀습니다. 이런 와중에 당시 최병주 대법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여자만은 처벌함이 옳다고 본다… 왜 그러냐 하면 여자는 원칙적으로 남자와 세 가지 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생리적으로 다르고, 심리적으로 다르며, 또한 남자의 성욕과 다르다는 점이다.” 남자의 성욕이 강해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인데, 어쨌든 대박입니다.

논의는 전쟁통에도 이어집니다. 박순천, 임영신 등 여성 국회의원들은 “이제까지의 이중생활은 불문에 부치겠다”며 남성 의원들을 설득합니다. 1953년 드디어 부산 피란국회에서 ‘남녀를 막론하고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형법 조항이 통과됩니다. 이듬해 한 여성이 처음으로 첩을 둔 남편을 고소하며 ‘남녀쌍벌’의 시작을 알립니다.

그렇지만 간통죄는 여전히 여성에게 더 가혹했습니다. 1959년 부인을 간통 혐의로 고소한 오영재 전 부흥부 차관은 “아내에게 녹용, 인삼을 먹여가며 몸을 보해줬건만 일방적으로 나를 배척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흰저고리를 입은 여성들이 그의 부인을 응원하려고 법정 밖에 인산인해를 이뤘고, 오 차관에게 방탕한 처신을 반성하라고 요구하며 욕을 해댔다고 합니다. 결국 인파를 정리하려 기마경찰까지 등장했던 이 사건은 “간통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인에게 무죄가 선고됩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뭔가 아쉬웠던지 이렇게 덧붙여 씁니다. “남편의 방탕에 항거하는 방법으로 춤을 춘 것이라 하지만… 만약 피고인이 진정한 모성애를 발휘하고 남편의 방탕을 막아가며 이불 속에서 고독의 눈물을 흘렸던들 남편이나 며느리나 자식들이 피고인을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의 율사들은 어떨까요.

2001년 헌법재판소는 간통죄에 대해 세 번째 합헌 결정을 내립니다. 당시 권성 재판관의 위헌 의견은 지금도 ‘헌재 역사상 가장 이상한 위헌 의견’으로 회자됩니다. “간통에 대한 형사처벌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 간통죄의 핵심은 유부녀의 간통을 처벌하는 데 있다.” 다음번 간통죄 위헌소송에서는 어떤 의견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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