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첫 호 1면에 실린 만화를 재료 삼아 만든 홍보 자료. <한겨레> 자료 사진
2008년 곰치잡이 배를 탔을 때가 생각납니다. 해가 뜨지도 않은 검은 바다로 나갔지요. 긴 세월 노동의 흔적이 밴 선장의 얼굴은 희망으로 빛났습니다. 만선의 꿈이겠지요. 그날 저는 뱃멀미로 엄청나게 고생했답니다. 사진 몇장 건지고, 주저앉아버렸어요. 하지만 뭍으로 나와 곰칫국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뱃멀미를 겪지 않았다면 곰칫국이 그토록 맛났을까 싶습니다. 뱃멀미는 ‘곰칫국 감동’을 위해 준비된 선물이었죠. 사는 게 다 이렇겠지요.
하고 싶은 일과 잘해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았습니다. 때로 둘은 같아서 ‘몰입의 즐거움’을 맛봤습니다. 반대로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면 마음의 짐은 상상초월이었답니다. 비단 저만의 고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후자를 이겨내면 ‘선장의 희망’이 선물처럼 왔습니다.
생은, 신은 항상 제 앞에 언덕을, 둔덕을, 산을 준비해두더군요.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전 운동화 끈을 동여맸습니다.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지금. 참으로 긴 세월 ESC와 웃고 울었습니다. 팀장을 맡아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독자님들께 드리려고 노력했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즐거우셨나요?) 그런 제 옆엔 언제나 훌륭한 선배와 든든한 동료와 듬직한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산을 넘지 못했겠지요. 이제 전 다른 산 앞에 서 있습니다. 곧 다른 이가 ‘세상의 모든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기 위해 나설 겁니다.
제 얘기만 구구절절 늘어놓았네요. 이번주 ESC는 ‘바지락 캐기’입니다. 시커먼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 바지락을 한 알씩 캐다 보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자, 독자님들도 산 앞에 서 계신다면, 바지락부터 캐고 오르실까요?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