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주방은 거실과 분리되어 있었죠. 부뚜막으로 대표되는 옛날 우리네 부엌을 생각해보시면 퍼뜩 이해하실 겁니다. 세상은 변했고, 10여년 전 주방 유행의 최전선을 장악한 건 아일랜드식 부엌이었죠. 주방과 거실 사이에 식탁을 설치한 형태로, 아파트 거주자가 대부분인 우리에게 꽤 적합한 구조로 보였지요. 조리하면서 대화하고, 대화하면서 식사하는 풍경이 연출됩니다. 예찬론자들이 꼽는 장점이죠. 탁 트인 시야에서 오는 해방감, 늘어난 가족 간 대화로 훈훈해진 집안 분위기 등도 꼽히는 좋은 점입니다. 부엌의 변화가 우리 삶을 바꾼다고 보는 겁니다.
부엌사를 살피면 지금 우리 삶을 반추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가구 디자이너 조 체사레 콜롬보가 1960년대 발표한 ‘움직이는 부엌’은 2000년대 풍경을 예상하고 디자인한 것 같습니다. 커다란 큐브 형태 덩어리 안에 미니 냉장고, 전기 버너 등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 방, 저 방으로 옮기기 편합니다. 어디든 끌고 갈 수 있죠. 플러그를 연결만 하면 됩니다. ‘움직이는 부엌’엔 극강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비단 부엌만이겠습니까. 요새 집 안을 바꾸는 이가 많습니다. 옛날 ‘집수리’는 비가 새고, 녹물 떨어지는 곳을 고치는 정도였지만, 요즘 ‘집수리’는 예쁜 타일을 붙이고, 취향 벽지를 바르는 등 집에 새 얼굴을 달아주는 겁니다. 아예 벽을 없애거나, 뚫는 이도 있다는군요.
1924년께 완성된 ‘슈뢰더 하우스’는 낮엔 방이 하나인데 밤이 되면 방이 여러개로 쪼개집니다. 가벽을 이용한 거죠. 가족들은 각자 방에서 잠을 잡니다. 벽의 변신은 무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주 ESC는 벽을 바꾸는 이들 얘기랍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