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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나마스테, 인도! 안녕, 인도!

등록 2020-11-19 07:59수정 2020-11-19 10:31

인도에서 곧 귀국할 작은미미. 사진 작은미미제공
인도에서 곧 귀국할 작은미미. 사진 작은미미제공

첫인상 때문에 절대 좋아질 리 없다고 생각한 비호감 상대에게 가랑비 젖듯 빠져든 경험이 있는가. 내겐 인도가 그런 존재다. 우리나라와 180도 다른 황당한(?) 인도에 본의 아니게 살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빠져들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나라가 인도다. 하지만 이제 인도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4년간 인도 생활이 일주일 뒤면 끝이 난다. 그러므로 이 글도 마지막이 될 듯하다.

4년 동안 뭐가 달라졌을까. 무심코 먹은 감자 칩에도 악몽처럼 따라오던 강력한 마살라(인도 향신료) 때문에 놀랐던 나. 하지만 이제 마살라 없으면 식탁이 허전하다. 털을 덜 뽑은 닭고기를 보고도 경기를 일으키지 않고 태연하게 씻을 수 있게 됐다. 제 시간에 가전제품 수리 기사가 집에 오면 그저 감사하고, 며칠 늦어도 인도 스타일로 받아들이며 불평을 안 한다. 카페에서 우연히 흐르던 재즈 버전 ‘아리랑’에 눈물이 갑자기 핑 돌았던 4년 전의 나. 이제 인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방탄소년단 노래를 당연하게 여기며 인도 친구에게 미소 한 방 날려준다. “남에서 왔니? 북에서 왔니?”라는 질문은 여전하지만, 발끈하지 않는다. “음, 어디일까? 비밀 지켜줄 수 있어?” 농을 한다.

10년간 인도에서 산, 심지어 인도인과 결혼까지 한 한국인 친구는 인도는 알면 알수록 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제는 인도에 대해 말하는 게 무섭더라.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친구 말처럼 내가 바라본 인도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한국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인도의 이미지 역시 극히 제한적이다.

보수적이지만,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는 나라. 전통과 현대가, 구세대와 젊은 층이 충돌하는 나라. 종교적인 색채가 어떤 나라보다 강하지만, 그 무엇보다 돈이 최고인 나라. 수많은 언어와 종교가 혼재된 곳. 인도에는 너무나도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인도는 OO이다”라고 정의할 수가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인도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거다. 우리와 완전히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속내는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 말이다.

미처 못 한 이야기가 많다. 최근 발견한 인도의 인디 가수들의 노래도 공유하고 싶었고, 인도 여성들이 전통 의상 사리를 얼마나 세련되게 소화하는지 알리고도 싶었다. 마블 뺨치는 쟁쟁한 히어로들이 나오는 인도 신화도 소개하고 싶었고, 1990년대 인도를 풍미한(우리나라로 치면 ‘우뢰매’ 같은) 영상물 삭티맨(Sakteeman)과 인도의 성인물 캐릭터 사비타 바비(Sabita Bhabhi)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떼춤과 뮤지컬 신이 1초도 나오지 않는 인도 영화나, 짜이(인도의 차)보다 커피가 대세인 인도 남부 지역의 100년 된 커피숍을 포함해 인도의 와인과 위스키에 대해서도 수다 떨고 싶었다.

몇 안 되는 인도 친구들과 송별회를 했다. “인도 떠나면 뭐가 제일 그리울 거 같아?” 나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끔뻑끔뻑했다. “안 그리워할 건데?” “엥? 인도를, 우리를 다 잊을 거야?” “그게 아니고….” 나는 오글거림을 참으며 말했다. “그리워하는 건 떠날 때 느끼는 감정이잖아.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너희들 곁에 살포시 걸칠 거야. 금방 돌아올게.” “그래. ‘올드 몽크’(Old Monk·인도의 저렴한 럼주) 들고 기다릴게.”

그간 ‘작은미미의 인도살이’를 읽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저의 좁은 식견과 무지 때문에 혹시라도 인도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잠시나마 인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셨기를 바랍니다. 한겨레신문과 ESC, 그리고 나의 말도 안 되는 질문들에 끈기 있게 답을 해주며 놀아준 인도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그들도 나를 통해 한국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인도와 한국, 두 나라가 조금 더 친해지면 좋겠습니다. 인도라는 녀석 알면 알수록 참 재미나고 정 많은, 괜찮은 친구이거든요.

‘작은미미의 인도살이’는 끝이 나지만, ‘미미의 인도놀이’ 혹은 ‘미미의 인도탐구’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글로든 노래로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나마스테 인도, 나마스테 한국!(끝)

작은미미(미미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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