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를 만들고 있는 친구 ‘비빔’. 사진 작은미미 제공
곰돌이 모양의 젤리를 씹는데, 뭔가 큼지막하고 딱딱한 게 씹혔다. 불길했다. 꺼내보니 역시나 크라운(인공치아)이었다. 1년 전에 해 넣은 크라운이 벌써 두 번째 빠졌다. 인도 수돗물에 석회가 많아서일까.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물론 ‘미미 시스터즈’는 나이가 없다!) 양치할 때 생수로 입을 헹구는 사치를 부리기도 했지만, 또 빠지고 말았다. 치과에 전화했더니 다행히 하루 5시간씩 진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손 세정제를 챙기고 한국산 비말 차단용 마스크를 쓰고 나섰다. 그러고 보니 나 혼자 외출을 한 건 4개월 만이었다. 예전처럼 차량도 많고,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포장마차 같은 길거리 식당도 많이 문 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휴업(?)했던 길거리 어린이들의 구걸도 다시 시작됐다.
경제적인 이유로 봉쇄령을 푼 인도는 확진자가 더 늘어서 이제 그 수가 러시아를 넘었다. 그나마 한동안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인도인들은 봉쇄령이 풀리자마자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상황이 나아져서 봉쇄령이 풀린 게 아닌데 말이다.
치과가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안 쓴 이에게 쓰라고 하자 그가 나를 째려보며 힌디어로 뭔가 중얼거린다. “까다로운 아시아인 같으니라고.” 입구에 서서 한참 방역을 했다. 체온 체크, 손 소독은 물론이고, 장갑도 끼워줬고 신발에 비닐도 씌웠다. 들어가려는데, 간호사가 작은 의료기기를 가져와 손가락에 끼웠다. 뭐냐고 물어봤지만, 방호복으로 무장한 간호사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간호사는 나의 가방과 휴대전화를 살균 통에 넣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거 체내 산소 함량을 측정하는 거야.” 의사는 산소 수치가 95 이상이어야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과할 정도의 검사들은 왠지 믿음직했다. “크라운은 왜 자꾸 빠지는 거야?”라고 묻자 “그러게, 왜 빠지는 걸까? 너 대체 뭘 먹은 거야?”라고 의사가 답했다. 내 책임으로 돌리는 거 같아 은근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게요, 엿도 아니고, 오징어도 아니고, 아이들이 먹는 곰돌이 모양 젤리가 이렇게 위험한 음식인 줄 몰랐네요.’ 의사는 두 번 다시 안 빠지게 해주겠다며 힘을 짜내며 크라운을 밀었다. 턱이 빠질 것 같았다.
그냥 집에 돌아가기 아쉬워 근처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문을 열면 으레 나던 책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한국 마스크의 위력이란!’ 하며 감탄하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의 누군가가 다가왔다. 서점 내 카페에 종종 봤던 ‘비빔’이었다. 본명은 ‘비빈’(Vivin)인데, 나는 그를 ‘비빔’이라고 부른다. 그는 요식업계 종사자다.
우리는 아래층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타코와 와플 전문점을 꽤 큰 규모로 운영하는 비빔에게 가게 사정을 물었더니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완전히 망했어. 임대료 낼 돈이 없어. 그러니까 네가 커피 사.” 우리는 커피 레모네이드와 카스카라(커피 열매) 주스를 주문했다. 마스크 사이로 빨대를 넣어 빨아 먹는 커피는 꿀맛이었다.
비빔은 밤마다 옥상에서 줄넘기를 2000번 한다고 했다. 3개월 동안 14㎏이 빠졌단다. “봉쇄령은 나에게서 많은 걸 뺏었어. 내 가게랑 내 살들을 말이야.”
우리는 재미있는 프로젝트 하나를 생각했다. 인도 집밥에 대한 프로젝트다. 인도 친구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집밥을 얻어먹고 수다 떠는 콘셉트다. 재미있지 않을까? 유튜브로 알릴지, 책으로 펴낼지, 아직 어떤 식으로 알릴지 정하진 않았지만 비빔은 일단 자기 집에서 시작하자고 했다. 동거 중인 커플과 같이 산다는 비빔 이야기에 화제는 인도 젊은이의 연애와 동거로 넘어간다. “요즘 한국은 ‘비혼’이 대세야”라고 하자 비빔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나저나 이 시국에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거, 괜찮을까? 우리의 수다는 잠시 갈 곳을 잃었다. 아무래도 아이템을 바꿔야 할 거 같다. 집에 돌아오니 마치 화성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피곤함이 몰려왔다. 당분간은 또 칩거 생활에 들어가야겠다.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의 멤버·뮤지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