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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마살라, 망고에 뿌려 뿌려 나는야 인도인

등록 2020-06-17 22:23수정 2020-06-18 02:43

작은 미미의 인도살이
각종 향신료를 파는 인도의 마트. 작은미미가 귀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작은미미 제공
각종 향신료를 파는 인도의 마트. 작은미미가 귀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작은미미 제공

푹 익은 망고를 깎아 먹는데, 순간 망고가 멍게로 보였다. 진한 오렌지색 때깔 하며 몽글한 식감, 풋풋한 바다 향 등. 멍게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때문인가. 심지어 이름도 비슷하다. 망고와 멍게. 나는 잠시 머나먼 옛날, 인도를 여행하던 조선시대 방랑객(왠지 선글라스 쓴 여자 캐릭터)을 떠올렸다. 천신만고 끝에 인도 해변에 다다른 그. 우연히 눈앞에 떨어진 망고를 허겁지겁 먹은 뒤 “이것은 이 나라 멍게?”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인도 사람들이 비슷하게 들리는 망고라고 이름 짓지 않았을까? 나는 무릎을 탁 치며 망고 어원 검색에 바로 들어갔다. 몇 분 뒤. 나는 어느새 멍게와의 상관관계는 잊어버리고 인도의 망고 레시피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니 이 사람들, 망고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고? 과일에 뿌리는 마살라도 따로 판다고?

인도는 마살라의 천국이다. 마살라는 향신료를 뜻하는 인도말로 인도의 메인요리, 디저트, 과일뿐만 아니라 심지어 음료수와 과자에도 들어간다. 커민, 카다멈, 클로브 같은 이국적인 이름의 이 향신료들을 자기 입맛대로 비율을 맞춰 요리에 넣는 인도인들. 12억 인구만큼 12억 가지의 마살라가 있다는데, 과장처럼 들리나?

4년 전 처음 인도 마트를 갔을 때 마트 직원에게 커리가 어디 있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직원이 못 알아듣는 거 같아서 내 발음이 이상한가 싶었다. 커리? 커뤼? 카리? 꺼리? 직원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건 없다고 했다. 귀신에 홀린 거 같았다. 인도에 커리가 없다고?

인도 음식을 먹고 있는 작은미미. 사진 작은미미 제공
인도 음식을 먹고 있는 작은미미. 사진 작은미미 제공

그렇다. ‘인도에는 커리가 없다’까지는 아니고 희귀하다. 커리는 본디 남인도 타밀 지역의 말로 ‘소스’, ‘국물 요리’를 지칭하는 단어인데, 인도를 식민지화했던 영국인들이 국물 자작한 인도 요리에 커리란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것이 일본과 한국에 건너가 카레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도로 역수입되어 관광객이 많은 지역의 식당 메뉴판에 ‘커리’가 등장한 것이다.

그럼 인도 마트에서 커리를 사려면? 카레 냄새가 나는 곳을 따라가면 된다. 그곳에는 향신료를 재료에 맞춰 배합해놓은 마살라 가루를 판다. 생선 마살라, 치킨 마살라, 채소 마살라, 양고기 마살라 등. 하나씩 따로 팔기도 하고, 3분 카레처럼 레토르트로 팔기도 한다. 그렇게 인도 음식을 사 먹기도, 해 먹기도 하며 나는 인도 정착 초기를 보냈다.

당시 한국 친구들에게 마살라에 대해 썰을 풀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된장찌개를 생각하면 돼. 고추장 된장찌개냐, 비지찌개냐, 아니면 게가 들어갔느냐, 소고기가 들어갔느냐에 따라 찌개 양념이 조금씩 달라지잖아. 인도 요리도 주요 재료에 따라 마살라의 비율이 달라질 뿐이야. 그런데 인도는 주재료보다는 마살라의 존재감이 훨씬 강해. 원재료의 맛을 덮어버리지. 인도 요리의 주인공은 마살라야.

인도 음식. 사진 작은미미 제공
인도 음식. 사진 작은미미 제공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부끄럽다. 맞는 말도 조금 있지만 거의 미맹에 가까운 평가가 아닌가 싶다. 내가 그 당시 평가절하했던 여러 마살라의 ‘배합’, 그게 인도 요리의 핵심이었던 것을 몰랐다. 솔직히 그땐 어떤 인도 요리를 먹어도 그 마살라에 혀가 금방 지쳐버렸다. 완전히 다른 재료(예를 들어 코코넛 우유)가 섞이지 않는 한 인도 요리는 그저 맵고 자극적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내 혀는 조금씩 다양한 인도 요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솔직히 중독됐다. 인도 요리는 마살라의 배합으로 판도가 바뀐다. 내가 3년 전에 한 말은 마치 외국인이 “한국 음식은 다 거기서 거기야. 아구찜이나 닭볶음탕이나 김치찌개나 고춧가루, 고추장으로 대충 버무리는 거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너무 많은 부분을 놓친 말이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다. 왜 생과일주스에, 콜라에, 과일에 마살라를 뿌리는 걸까. 감자칩까지 말이다. 마살라가 없다면 어딘가 맛이 비었다고 느끼는 걸까? 나는 무작위로 인도 친구 몇 명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친구들, 너희는 왜 그렇게 마살라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거니?”

시적인 답변 ① “그 복잡하고 카오스적인 맛이 좋아”/ 시적인 답변 ② “우리는 화끈한 민족이거든!”/ 조금 과학적인 답변 ① “인도인들의 미뢰(혀 감각)는 자동으로 마살라를 감지하는 기능이 있어서 가능한 한 많은 마살라를 느끼고 싶어 해.”/ 조금 과학적인 답변 ② “인도는 엄청 크고 엄청나게 많은 인간이 살고 있잖아. 마살라가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게 아닐까. 마살라에는 황금비율 같은 건 없어. 다들 각자 스타일대로 먹는 거지. 그리고 마살라 콜라는 좋아하지만, 망고에 마살라 뿌려 먹는 건 나도 안 좋아해.”

그렇게 인도를 돌아다니던 선글라스 차림의 조선시대 여자는 멍게 아니 망고에 초장을 뿌려 먹는 법을 인도인들에게 전파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름하여 ‘코리안 마살라’였다. 멍게 맛 망고를 씹어 먹으며 나는 좀 더 깊은 망상에 빠져본다.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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