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 전.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느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채용을 축소하거나 취소되던 때라 마음 졸였던 탓인지 채용 합격을 확인한 순간엔 몸을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찔끔 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푼 가슴으로 들어간 회사라는 조직은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과 회식, 그리고 한시도 머릿속에서 떠날 날이 없는 마감의 압박. 이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급기야는 자살 충동까지 생겨 결국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입사한 지 4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만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생겨난 작은 플랫폼에서 연재를 시작했고, 운 좋게 그 만화로 상도 받았습니다. 덕분에 신인 만화가지만, 나름 인지도가 생겨 이런저런 일을 맡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화를 그리는 것도 회사에 다니는 것만큼이나 고된 일이었습니다. 잠을 자는 시간은 나날이 줄어 아침 해가 뜨고 나서야 쪽잠을 자거나, 손마디가 저리고 허리가 아파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밥 먹듯이 먹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 싶던 차, 한겨레신문에서 칼럼 연재를 제안해 왔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다시 4년차입니다.
제법 많은 곳에 글을 실었습니다. 무슨 글을 썼는지 전부 기억하지 못합니다. 가끔 예전에 쓴 글을 읽어보곤 ‘이런 것도 썼나’ 싶어 의아할 때도 있습니다. 잘 썼다 싶은 것도 있고, 왜 썼나 싶은 것도 있지만, 결국엔 ‘지치지 않고 썼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스스로 “글 쓰는 자판기입니다”라며 말하곤 했습니다. 무슨 주제가 되건, 어느 지면이건 원하는 글을 대충은 써냈습니다. 글이란 똥 싸기와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주 싸다 보면 어느 날은 굵직한 황금색의 똥을 쌀 수 있듯이 많이 쓰다 보면 좋은 글도 얻어걸릴 수 있을 거라 여겨 고민 없이 글을 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앞서 그래 왔듯 지쳐버린 모양입니다. 예전엔 풀어내고 싶은 말이 많아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요즘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멍하니 빈 화면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속된 말로 밑천이 바닥난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문득 고등학교 때 문학 교과서에서 읽었던 윤오영의 <양잠설>이 떠올랐습니다. 누에를 치는 농가에서 하루 저녁을 보내던 필자는 어디서 비 오는 소리가 들려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옆방에서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라고 답합니다. 누에가 뽕을 충분히 먹어야 체내에 지방질이 충만해져 잘 자라고 튼실한 실을 뽑아 몸을 고정한 후 잠이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에는 얼마 후 탈피해 또 뽕을 먹고 잠드는 과정을 다섯 번 거치고 나서야 고치를 만듭니다. 이 얘기를 들은 필자는 ‘사람이 글을 쓰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밑천이 바닥난 것이 아니라 이제 첫 탈피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제가 할 일은 나오지 않는 글을 짜내느라 애를 쓰거나,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 싶어 그만두는 대신 잠시 쓰는 것을 멈추고 또다시 실을 뽑아낼 수 있게 뽕잎을 좀 먹어야 할 때이겠지요. 해서 수필가로 다섯권의 책을 낼 수 있게 해준 <한겨레> ESC에서의 연재를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그간 별 볼 일 없는 글을 봐주신 독자분들과 보잘것없는 글을 실어주신 한겨레신문에 감사드리며 머지않은 때에 다시 또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돌아오겠습니다. 참고로 이 글은 정말 오래간만에 쉽게 쓰여 그냥 연재를 계속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쉬었다 오는 것이 맞겠지요. 그럼, 다음에 또 뵐 때까지 모두 별 탈 없는 날들이 되시길 바라며 연재를 마칩니다.
<끝>
글·그림 김보통(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