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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사라진 투표권, 일단 살고 보자

등록 2020-04-22 22:07수정 2020-04-23 02:10

작은 미미의 인도살이
인도에서 열린 한국인 주최 나눔 행사. 사진 ‘인도 도토리’ 제공
인도에서 열린 한국인 주최 나눔 행사. 사진 ‘인도 도토리’ 제공

인도 전역에 내린 봉쇄령 때문에 아슬아슬한 하루를 보내는데, 인도판 ‘신천지’ 사건이 터졌다. 이슬람교도 선교단체 신자 8000여명이 뉴델리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폭 늘었다. 안 그래도 이슬람교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인도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적대심이 더 큰 사건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 4월 초에 신청했던 4·15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사전 투표가 무효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6일간 예정되었던 재외 투표가 하루로 줄더니 급기야 인도에서는 선거 자체를 실시하지 않게 되었다는 선관위의 공지가 뜬 것이다. 이 시국에 델리에 있는 한국대사관까지 갈 방법은 없기에 현실적으로 투표할 방법이 없다는 걸 받아들였지만, 아예 권리마저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온라인 투표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 싶었지만, 대사관에서 어련히 노력했을까 싶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선거권을 박탈당했다고 분노했고, 다른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혹시라도 투표하려고 모인 한국인 사이에서 확진자가 나온다면 그게 더 끔찍한 일이지 않으냐고 했다. 생명권이 오락가락하는데 선거가 대수랴. 하지만 대수긴 대수다.

인도에서 열린 한국인 주최 나눔 행사. 사진 ‘인도 도토리’ 제공
인도에서 열린 한국인 주최 나눔 행사. 사진 ‘인도 도토리’ 제공

며칠 전에는 한국행 특별 항공기가 떴다. 사전 수요 조사를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뜬 비행기였다. 노약자와 오지에 갇혀 있던 여행자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우선이었다. 한국인 200여명이 인도를 떠났다. 친하게 지내던 ㅎ도 어린아이들과 함께 귀국했다. “언니, 갔다 올게요. 나 보고 싶다고 울지 마요.” ㅎ은 인도로 돌아온다고도 했고, 한국에서 복직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국 도착 후 수차례 검역 절차를 통과한 ㅎ은 고향에 돌아가 자가 격리를 시작했는데, 시청에서 보내준 구호 물품이라며 생필품 사진 여러 장을 보내왔다. 김, 스팸, 장조림 통조림, 인스턴트 카레와 짜장 등. 인도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중고 나라’에서 비싸게 팔리는 품목들이 눈에 띄었다. ㅎ은 너스레를 떤다. “어, 이 식량 고스란히 인도 갖고 돌아가서 팔면 한몫 잡겠는데요.”

그래, 식량. 먹는 게 항상 문제다. 갇혀 있다 보니 삼시 세끼 먹고 치우는 게 제일 큰일이다. 기쁜 마음으로 한 상 차릴 때도 있지만, 매끼 다른 메뉴를 차리는 일은 토할 만큼 싫다. 그럴 때는 몇 개 안 되는 한국 음식 배달 업체에 구원의 손길을 뻗는다. 그분들은 진정한 구세주요, 어벤져스다. 이 시국에 더욱 빛나는 그들은 인도 경찰들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델리 인근 한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출동한다. 집 안에 발이 묶여버린 한인들에게 음식 할인 행사를 하질 않나, 평소에 팔지 않던 고기와 채소까지 배달한다. 기숙사에 갇혀 버린 어린 유학생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가게도 있고, 배를 곯고 있는 인도 빈민들에게 빵이나 먹거리 배식 봉사를 하는 이도 있다. ‘인도 도토리’로 통하는 이는 무려 6000인분의 음식을 델리 빈민촌에 기부했다. 한차례로 하고 마는 행사라도 대단한데, 매주 진행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렇게 소매 걷고 나서는 분들이 옆에 있으면, 한국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기부와 모금 활동이 교민들 사이에서 활발하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더욱 보란 듯이 힘차게 살아 나가는 이들을 보면 자극을 받는다.

인도에서 파는 망고. 사진 작은미미 제공
인도에서 파는 망고. 사진 작은미미 제공

봉쇄령을 연장할 거라는 소문도 있고, 잠시 풀었다가 장기화할 거라는 루머도 있다. 한시도 예측할 수 없는 요즘이다. 사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봉쇄한 지 며칠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동네 슈퍼에 망고가 들어온 걸 보고 나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망고 시즌이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파파야와 망고를 잔뜩 사 와서 먹고 있으려니 ㅎ 생각이 난다. 망고를 유독 좋아해서 냉동실 가득 망고를 얼려두던 우리, 어디에서라도 살아남자, 자연사할 때까지!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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