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방송한 지 2주 만에 자체 시청률 15%를 기록하며 흥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유독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이유는 극 전반에 흐르는 쫀쫀한 긴장감 때문이죠. 퍼즐을 맞추듯 조금씩 남편의 외도를 알아내는 지선우(김희애)의 섬세한 추적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고무줄처럼 팽팽합니다. “아내도, 애인도 모두 사랑한다”는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파렴치한 말에 분노가 치밀지만, 주인공의 복수를 정당화하는 배경이 될 터이니 참자는 생각이 듭니다. 믿는 이의 배신은 큰 상처가 됩니다. 인간사에서 배신은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당하는 쪽에선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되기도 하지요.
음식기자인 제게 배신자들은 음식업계의 사기꾼들입니다. 중국산 게를 국산 게로 속여 비싸게 팔고, 소박하고 착한 작은 가게의 레시피를 몰래 빼내 자신이 개발한 것처럼 세상을 속이고, 싸구려 식재료를 쓰면서 건강식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홍보하는 이들 모두 배신자들이죠. 당한 이들은 세상의 정의에 회의를 느낍니다. 규칙을 지키며 사는 이만 바보인가 싶은 거죠. 최근 ‘배달의 민족’의 수수료 사건과 관련해 ‘배신의 민족’이란 조롱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민’의 성공엔 업체 우아한형제들의 노고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와 식당 주인들, 배달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이 스며있는 것이죠. 경제의 여러 주체가 이룬 과실을 왜 한쪽만 차지해야 하는 것인가요. 긴 시간 음식업계를 취재하면서 연을 맺은 많은 식당 주인들은 폭발 직전입니다.
이번 주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뭘 할까요?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선택했지요. 제주 사는 송호균 객원기자가 전해주는 ‘고사리 채집’ 이야기를 읽은 후 그가 추천하는 ‘고사리 백숙’, ‘고사리나물전’ 등을 집에서 만들어보는 겁니다. 쉽습니다. 배신과 불의에 침몰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번엔 고사리로 지켜볼까 합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