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얘기지만 외식이 많이 줄었습니다. 가능한 식사는 집에서 해먹으며 지내다 보니 다양한 요리를 익히게 됐습니다. 마침 저렴한 가격으로 산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던 중 좀 더 과감하고 색다른 요리를 해보고 싶어져 돼지껍데기 튀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무슨 그런 음식이 있냐 싶지만, 멕시코에서는 ‘치차론’이라고 부르며 간식으로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역시나 백종원씨의 조리법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레시피가 늘 그렇듯) 별로 어렵지 않아 보여 해볼 만하다 싶었습니다. 즉시 돼지껍데기를 주문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것이니 가볍게 1㎏만 할까 하다 ‘이왕 하는 김에’라는 생각에 2㎏을 주문했습니다.
돼지껍데기 2㎏은 작은 베개만 한 크기였고, 매우 묵직했습니다. 너무 많은가 싶어 반만 쓰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둘까 했으나 아끼다 똥 된 경험이 너무 많아 그냥 다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 커다란 냄비에 돼지껍데기와 갖은 향신료를 넣고 끓였습니다. 한 시간에 걸쳐 끓이는 동안 집 안엔 돼지 누린내가 가득 찼습니다. 창문을 다 열어도 역한 냄새에 향초를 두 개나 피워뒀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누린내와 향초 향이 섞여 한층 오묘한 냄새가 되어버렸습니다.
삶은 것은 건져낸 뒤 수분을 없애기 위해 에어프라이어에서 낮은 온도로 2시간가량을 건조했습니다. 이 정도면 됐을까 싶어 그중 몇 개를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살짝 튀겼습니다. 그러나 연기를 내며 타기만 할 뿐 사진으로 본 ‘치차론’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아마도 돼지껍데기를 덜 말렸기 때문이라 생각해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하루를 더 말렸습니다. 이번에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몇 개를 튀겨보았습니다. 모양이 제법 그럴싸한 것 같아 기대하며 입에 넣었습니다. 와작 씹으니, 입안에서 꽈 광 소리가 나며 이빨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도저히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딱딱해 ‘도자기를 구운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덜 말렸기 때문일 거라 판단한 저는 하루를 더 말렸습니다.
다음 날, 이제는 육포처럼 바싹 쪼그라든 돼지껍데기를 다시 한 번 튀겨보았습니다. 바사삭하며 입안에서 부서지는 느낌이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습니다. 만드느라 수고한 것에 비해 특별히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겨우 이런 걸 만들겠다고 지난 이박삼일 간 그 난리를 피운 건가 싶어져 허탈했습니다.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에 나오는 거지는 결국 은전을 손에 넣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는데, 저는 그만 맥이 풀려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국 몇 개 집어먹다 말고 남은 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습니다. 그때 반려견 ‘뽀송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아닌 돼지껍데기를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 던져주니 정신없이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버릴 거면 자신에게 달라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혀로 입을 훔쳤습니다.
결국 돼지껍데기는 뽀송이 간식이 됐습니다. 몇날 며칠에 걸쳐 정성을 들여 강아지 간식을 만든 꼴입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결말을 맞이한 셈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코로나19 탓에 많은 부분에서 불편을 겪고 있었지만 별개로 그 덕분에 간식을 얻고, 또 주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뽀송이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