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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성대한 결혼식도, 거창한 축제도 사라진 인도

등록 2020-03-18 21:12수정 2020-03-19 02:40

작은미미의 인도살이
3년 전 경험한 인도의 축제 홀리. 사진 작은미미 제공
3년 전 경험한 인도의 축제 홀리. 사진 작은미미 제공

인도 명절 홀리(올해는 3월10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설날에 해당하는 최대 명절이다.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물감과 가루를 서로에게 뿌리며 인도의 봄을 축하한다. 3년 전 나의 첫 홀리, 모르는 사람한테서 물 폭탄 세례를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물 폭탄에 옷이 엉망이 되었지만, 그저 즐거웠다.

올해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는 홀리 행사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이 축제 행사가 금지된 것은 인도 역사상 처음이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1월 초까지만 해도 남부 지역 케랄라에서 단 3명의 확진자만 나왔더랬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인데, 이상하게 인도는 조용했다. 그랬던 인도에도 코로나19가 성큼 다가왔다. 인도 발음으로는 ‘꼬로나19’다.

해외여행자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슬금슬금 늘기 시작하자 모디는 갑자기 인도를 통째로 봉쇄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있다가 갑자기 강력하게 대처하는 전형적인 인도 스타일이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사러 다녔다. 약국을 다섯 군데 정도 돈 뒤에야 겨우 손에 넣은 마스크 한 개 가격은 5000원. 손 세정제는 죄다 품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델리에 있는 정부 병원에서 마스크를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다.

지난 한 달, 몸은 인도에 있지만, 마음은 오로지 한국에 있었다. 가족들이 여전히 대구에 사는 나는 매일 아침 그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인도가 흔들린다. 델리에 있는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졌다. 인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일상 공간인 영화관도 문을 닫았다. 안내 전화는 “꼬로나, 꼬로나” 하며 힌두어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한국인들에 대한 차별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첸나이 지역에 사는 한 인도인 집주인은 단지 세입자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이 지역엔 한국 교민이 4000명 정도 산다. 회사원인 한 한국인 지인은 인도 국내 출장 가는 길에 좌석을 구석으로 바꿔도 되겠냐는 항공사의 요청을 받았다. 그 이유가 기가 찬다. 비행기 무게의 밸런스를 위해서란다. 속내는 다른 데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3년 전 경험한 인도의 축제 홀리. 사진 작은미미 제공
3년 전 경험한 인도의 축제 홀리. 사진 작은미미 제공

학교는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근 한 달 동안 해외 방문 여부를 묻는 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하다. 10억이 넘는 인구의 인도가 뚫리면 안 되니까. 인도에 코로나19가 창궐하면 그런 끔찍한 재앙도 없을 테니까.

길거리에 수많은 인도 사람을 본다. 수십명이 길거리에 서서 생과일주스와 사모사 같은 길거리 주전부리들을 먹는다. 그 옆에서 노상 방뇨하는 남자들도 있다. 불가촉천민 마을에서는 얄팍한 비닐 텐트 속에 수십명이 함께 산다. 구정물에 빨래하고, 그 물로 샤워를 하는 사람들, 길거리에 똥을 싸는 아이들. 더는 더럽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인도의 평화로운 모습들. 하지만 코로나19가 이들 사이에 번진다면?

문득 4년 전 처음 인도에 오자마자 걸린 독한 감기가 떠올랐다. 아이가 이유 없이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피검사를 했는데, 우리 가족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열병에 시달린 꼴이 됐다. 일주일 정도 꼬박 함께 앓고 난 뒤에야 결과가 나왔다. ‘신종플루’(일명 돼지독감). 한국에서는 약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타미플루를 먹으면 치료가 되지만 인도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일반 감기약만 먹었다. 인도에서는 신종플루로 매년 10000여명이 죽는다.

계절마다 다양한 전염병들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가 인도다. 뎅기열, 콜레라 등. 아마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망자도 많을 것이다. 병원에 갈 수도 없어서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모르는 이가 많은 나라, 인도.

모디는 결국 국가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당분간 최소 2박3일간 열리는 성대한 결혼식도, 인도 국민이 열광하는 크리켓 경기도 없을 예정이다. 의외로 인도 친구들은 태연하다. 우린 강황 덕분에 코로나19 안 걸린다는 마살라 부심파도 있고, ‘어차피 인간은 죽는데 뭘’ 하는 죽음 초연파도 있다. ‘역시 고기는 먹으면 안 돼’ 하는 채식옹호파부터 심지어 인도에서 신성시하는 소의 오줌을 마시면 코노라19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오줌파까지 공존한다.

부디 인도에 코노라19가 조용히 지나가 주기를. 내년 홀리에는 올해 못다 던진 물 폭탄을 다들 던질 수 있기를. 온 세상에 일상이 어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빈다.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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