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산책을 했습니다. 한산한 거리엔 오가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빠짐없이 마스크를 쓴 채였고, 중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듯 멀찍이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지나쳤습니다. 상점가는 쓸쓸했습니다. 임시 휴업을 알리며 불이 꺼진 상가와 손님 한명 없는 가게를 홀로 지키고 있는 주인, 마스크를 쓴 채 판매대의 물품을 정리하는 점원의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 완공해 영업을 시작한 호텔은 휘황찬란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외관과 대비되게 불이 켜져 있는 객실이 없었습니다. 걷고 있노라니 우울하면서도 낯설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 내가 있을 거라고 예상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에서 종종 ‘내가 상상하는 미래’를 그리곤 했습니다. 그림 속에선 높다란 빌딩 사이로 자동차들이 날아다녔습니다. 거대한 빨대 같은 튜브로 만들어진 수중 터널을 타고 바닷속 도시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목적을 알 수 없는 기계장치와 걸리적거리기만 할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옷을 몸에 걸친 채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대책 없이 긍정적인 미래였습니다. 당시는 구미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탱크에서 흘러나온 페놀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난리가 났던 무렵입니다. ‘낙동강 페놀 물에 두 손을 담그면~ 초오록~ 페놀 빛 물~이 들지요’ 하던 노래를 부르던 것이 기억납니다. 공기 오염으로 산성화된 비가 내려 우산을 쓰지 않으면 머리털이 많이 빠진다는 말을 너도나도 하던 때이기도 하며, 아침 뉴스에 서울 도심 스모그 현상에 대한 소식이 연일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속 편하게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당장의 현실은 다소 암울하더라도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 요즘 아이들은 과학 상상화에 어떤 미래를 그릴까 생각했습니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해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고, 온 나라가 방역에 매달리는 와중에 한 종교집단이 폭발적으로 감염을 확산시켰습니다. 그래서 방안에 틀어박혀 방학을 다 보냈는데 이번엔 개학이 연기가 됐습니다. 마스크를 사재기해 비싼 값에 되팔아 한몫을 챙기려는 사람과 자신의 암보험을 해약한 돈을 기부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이야기가 같은 날 뉴스에서 보도됩니다. 여러모로 혼란스럽기만 한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은 과연 어떤 내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물론 머지않아 사태는 진정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옛날에 그런 때가 있었다며 오늘을 회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이 멋진 미래를 상상하고, 확신하기 위해선 힘든 시간을 현명하게 헤쳐 나가는 성숙한 어른들의 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편을 갈라 미워하고 배제하며 내 욕심으로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기보다, 가진 것을 나누고 약한 자를 보호하며 자신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그림 김보통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