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미미의 친구들인 ‘세 얼간이’. 사진 작은미미 제공
한국에 잘 들어갔냐? 여기 있을 때만 해도 평생 충성할 듯 굴더니, 귀국 인사도 없구나. 너희가 인도에 다녀간 지도 벌써 보름이 다 되어 간다. 어제 ‘얼간이 1호’랑 톡으로 대화했지, 하마터면 인도 여행 못 할 뻔했다고. 결국 인도도 ‘코로나19’ 관련해 한국인에게 발급한 기존 모든 비자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성명을 발표했어. 사실상 입국 금지인 거지. 자칫하면 현재 공익 요원인 ‘얼간이 1호’는 군대 휴가 내내 인도의 격리 병동에서 보낼 뻔했네.
2년 전에 네가 인도에 처음 왔을 때 2주 동안 바라나시 화장터에만 있었던 게 생각난다. 갠지스 강 위를 떠다니는 시신 조각들을 하염없이 봤다던 너. 밴드 실리카겔 기타리스트인 너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인도에서 처음 만났지. 무작정 우리 집에서 2주 묵겠다고 해서 처음엔 당황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인도 영화 <세 얼간이> 주인공 같은 네가 좋았어. 20시간 탄 기차에서 내내 폭풍 설사한 뒤 피골이 상접한 너를 만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엔 두 번째 여행이라며 여유 부리는 모습도 예쁘기만 했어. 히말라야 오른다면서 단화만 달랑 신고 온 그 패기! 이번에 같이 온 네 친구들도 ‘얼간이 2호’, ‘얼간이 3호’라고 부를래.
‘얼간이 2호’는 무려 19살 때 이미 인도를 여행했다고 해서 놀랐어. 시킴에서 인도 스케이트보드 타는 이들과 같이 살면서 사진 작업을 한 2호가 우리 집에 오자마자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 “누나 저 먹는 양이 많지는 않아요.” 인생은 반전이 있어서 살만하다고 했나! 2호가 우리 집 냉장고를 거덜을 낼 때마다 웃었어.
인도가 난생처음이라는 3호는 누구보다 마살라(배합 향신료)에 집착해서 ‘마살라남’이라고 별명 붙였잖아.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3호 때문에 나도 처음 사 본 인도 음식이 많았어. ‘마살라 사이다’는 의외로 난도가 높았지. 히말라야에서 벌벌 떨며 커피포트에 라면 끓여 먹은 얘기를 하면서 스팸을 한우 먹듯 흡입하던 너희. 이구동성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말했던 그 날 밤. “언제 다시 인도에 올 수 있을까” 하며 아쉽게 웃던 너희 얼굴이 지금도 생각나.
‘인도 생활자’인 나는 너희 같은 여행자들이 우리 집에 머물 때마다 정말 신선하고 좋아. 내 일상이 여행처럼 느껴지거든. <세 얼간이> 주인공들처럼 인도인들 틈에서 정신 빠지게 춤을 함께 출 때는 정말 흥겨웠어. 너희를 보내기가 아쉬웠지. 하지만 다른 이들을 기대하면서 마음을 달랬어.
그런데 보름만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현실적인 풍경들이 펼쳐졌어. 갑자기 모든 것이 멈췄다. 동시에 나도 멈췄다. 큰미미와 계획했던 인도 공연도, 친구의 인도 가족 여행도 모두 멈췄어.
1호는 괜찮은지, 필름을 잔뜩 가져와 40롤 이상 사진 찍고 간 2호는 전시회 준비가 잘 되어 가는지, 방송국에서 일하는 3호도 안전한지, 미칠 듯이 걱정된다. 다들 괜찮은 거니?
그동안 인도에 살면서 항상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들의 얘기만 들었지. ‘인도 공기는 괜찮니?’ ‘요즘 뎅기열 바이러스에 안전한 거지?’ ‘45도라니!’ 하지만 이제 내가 한국을 걱정한다. 덩치는 작지만, 너무나도 똑똑한 내 나라라서 단 한 번도 불안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요즘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리며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인도는 이상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어. ‘마살라가 코로나를 막아내고 있다’ ‘아니다. 인도가 너무 더러워서 코로나도 도망갔다’ 등 인도인들은 서로 농담을 하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재난에 심리적인 대비를 하고 있다. 나에게 서울의 텅 빈 시장 사진을 보내면서 “한국 가족들과 친구들은 괜찮으냐”고 걱정해주는 인도 친구들.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괜찮아질 거야.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 뭉치는 특이한 나라거든.” “당연하지, 한국이라면 당연히 잘 이겨낼 거야.” 나는 친구가 보내준 서울의 하늘 사진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눈물 나게 파란 서울의 하늘. 봐라, 우리나라 3월은 이렇게 끝내주는 계절이란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다시 여행을 꿈꾸게 될 그 날까지, 세 얼간이를 비롯한 한국에 있는 모든 분,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두 정말 보고 싶다.
글·사진 작은미미(미미 시스터즈 멤버·뮤지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