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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37, 78. 그리고 드랙

등록 2019-07-17 20:34수정 2019-07-17 20:44

향이네 식탁
3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사진공동취재단
3년 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사진공동취재단

‘37’과 ‘78;’. 이 두 숫자의 간극이 그토록 클지 몰랐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어린 저를 바둑판 앞에 앉히고는 검은 돌을 집게 하셨어요. 바둑을 매우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큰딸이 한글을 깨치기도 전에 바둑부터 배우길 바라셨지요. 조치훈 9단이나 이창호 9단처럼 바둑 영재가 되길 꿈꾸신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적적한 시간에 대적할 상대로 딸이 빨리 성장하길 바라셨던 거죠.

하지만 자식은 부모 뜻대로 되는 법이 없지요. 두꺼운 나무 탁자에 흰 돌과 검은 돌만 왔다 갔다 하는 바둑은 제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놀이었답니다. 한 수 배울 때마다 아버지가 주신 과자가 아니었다면, 4살 꼬맹이는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3년 전 열린 ‘알파고 대 이세돌 바둑 대격돌’에 언론의 호들갑이 심하다고 생각했어요. 고작 기계와 바둑 다섯 판 두는 게 기후변화나 지엠오(유전자 변형생물체) 점령 등에 견줘 무에 중요하다고 이 난리인가 싶었지요.

하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어요. 심지어 이번 주말엔 기원을 가볼까도 생각 중입니다. 다큐멘터리 <알파고>를 보고 난 다음 든 감동 때문이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간’은 이세돌 9단이라고 감히 주장해 봅니다. 딱 한 판 이긴 그. 진 경기에서도 교훈을 찾은 그. 두 번째 대결에서 인간을 나락으로 몰고 간 알파고의 37수. 이세돌 9단이 승리한 네 번째 대결에서 ‘신의 한 수’로 평가되는 그의 78수.

세상은 공상과학영화처럼 미세한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그것이 파멸에 이르는 균열인지 진보에 이르는 혁신인지 알 순 없지만, 바뀌고 있는 건 현실입니다. ESC 이번 주 커버 주제인 ‘드랙’(드래그)도 같은 맥락의 얘기입니다. 타고난 성별과 상관없이 의상과 화장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인 드랙은 최근 워크숍,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활동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일’이라고 하네요.

박미향 팀장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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