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동네엔 작은 떡볶이집이 하나 있습니다. 허름하고 후미진 골목 안 깊숙한 곳에 있다 보니 주민이 아니고서는 찾기 어려운 분식점이었죠. 일흔을 넘은 할머니는 두툼한 손으로 쓱 떡을 휘저어 맛을 내는데, 그저 평범한 떡볶이가 단박에 ‘고품격 맛’이 돼버립니다. 이 집의 오징어 튀김도 인기랍니다. 다른 분식집처럼 눅눅하지 않아요. 바구니 한가득 미리 만들어 놓을 필요가 없어요. 동네 꼬마부터 백발 성성한 노인까지 제집 드나들듯 해 금세 동이 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계속 튀기고 주민은 바로 집어갑니다. 어느 날 이곳이 변했어요. 지방에 사는 이도 차를 끌고 와 사가더군요. 우리는 뒷전이 됐어요. 할머니만 있던 그곳엔 이제 자녀 여러 명이 와 장사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먹방’에 소개되면서 달라진 거죠. 정말 섭섭하더군요.
앞으로 ‘노블 푸드’(novel food)가 뜰 것이라는 얘길 한 책에서 읽고 떡볶이집과는 종류가 다른 섭섭한 마음이 들더군요. 노블 푸드는 ‘이 전에 없었던 새로운 음식’, ‘신소재 식품’을 말합니다. 곤충햄버거, 노니주스, 줄기세포 패티 같은 겁니다. 식도락은 사라지고 기능적인 섭취와 생경한 것에 적응하려고 안간힘 쓰는 초라한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외지에서 온 이들 사이를 비집고 떡볶이 한 그릇이라도 사려고 몸부림쳤던 저와 같은 거죠.
그날 밤 제 몸의 두 배가 넘는 허연 가래떡이 목을 조르고, 곤충들이 달려들어 햄버거를 난도질하는 악몽을 꿨습니다.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가위에서 벗어나려고 힘을 줬지만, 소용이 없더군요. 깨자마자 마치 예지몽인가 싶어 고민에 빠졌는데 이번 ESC 제작하면서 알게 됐어요. 낮에 겪은 스트레스가 악몽이 된다는 것을요. 제겐 떡볶이집의 변화도, 노블 푸드도 스트레스였던 거죠. 요즘 잠 못 이루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노인뿐만 아니라 20~30대 청춘도 많다는군요. 잠이 보약인데 말이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잘 자는 법, 그래서 잘 사는 법을 말이죠.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