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휴일엔 집에 처박혀 소파의 오른쪽과 왼쪽을 오가며 리모컨을 친구 삼아 노는 편입니다. 밀린 영화도 보고 쌓아둔 책도 뒤적이며 시간이 흘러가는 걸 심드렁하게 보고 있노라면 좀 한심해 보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은 중국음식 수업을 듣고, 더러 혼자 도시여행도 합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유명한 곳도 다시 찾으면 생경한 풍경에 가슴이 설렙니다.
한번은 서울 성수동 서울숲 근처를 갔지요. 세련된 카페와 찌그러진 양은냄비처럼 낡은 30년 역사의 돼지갈비집이 공존하는 그곳. 전 ‘카페 성수’에서 넓은 식탁을 마치 제 개인용 책상인 양 노트북을 켜놓고 일하고, 배우 배용준이 주인인 카페 ‘센터카페’에선 산미 가득한 커피를 마셨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까만 우주에 빛나는 목성처럼 뭔가가 눈에 들어왔어요. ‘북카페 초록’이었습니다. 힙(hip)하고 독특했습니다.
책 한 권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일본인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쓴 이 책 <약간의 거리를 둔다>의 목차도 제 가슴을 쳤습니다. ‘회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인생은 좋았고, 때로 나빴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비겁하다’ ‘적당함의 미학’ 등. 심드렁한 제 주말과 왠지 맥이 닿아 있어 보였죠. ‘글자 힐링’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책 읽는 인구가 계속 준다고는 하지만, 결국 잃어버린 인생을 되찾거나 잘못 들어선 길을 알아채는 방법으로 독서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호에 다룬 가계부도 이런 범주에 듭니다. 숫자만 기입된 재테크용 참고서적의 범위를 넘어 한 가정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기도 하더이다. 수년 전 적어 놓은 콩나물 가격이나 가족을 위해 산 선물 목록 등은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기쁘고, 때로 슬펐을 뿐’인 거죠.
자신이 필자이자 독자인 가계부는 한때 ‘올드패션’으로 취급받았으나 방송인 김생민이 소환해 세상에 이로운 것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청자가 보낸 영수증을 보고 ‘스튜핏’과 ‘그뤠잇’을 외칩니다. 저의 성수동 투어는 ‘그뤠잇’일까요?
박미향 팀장 mh@hani.co.kr
※ ESC는 3~4주간 각종 포털에 뜬 ‘실검’과 ‘연관 검색어’ 중에서 다뤄볼 만한 주제를 골라 커버로 구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