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학생들에게 사랑에 대한 강연을 하러 가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했을 때, 그 상대방도 제 마음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단서나 증거는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나요?”
사실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건 그저 완벽주의자나 겁쟁이들에게 어울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에서야 이 질문에 함의된 ‘무엇’을 이해하게 되었다.
며칠 전 오후, 뭐든지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다이소에 갔었다. 그냥 순간접착제나 하나 살까 하고 들어간 그곳엔 정말이지 없는 걸 떠올리기가 더 어려울 만큼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팔고 있었다. 그것도 당황스러울 만큼 저렴한 가격에. 아주 오래전에 이 매장에 왔을 때는 어딘가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많이 찾는 인기 매장이 되어 있었다. 이것저것 쉴 새 없이 바구니에 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나는 문득 모든 것을 다이소에서 해결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무엇이든 꽤나 저렴한 가격에 사지만, 그러므로 소재나 디테일, 내구성 같은 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는 생활의 방식, 가성비를 1순위에 놓았기에 고유한 취향도 만들어지기 어려워지는 소비의 패턴. 분명히 다른 브랜드에서 4천원쯤에 샀던 화장품 용기를 1천원에 팔고 있는 걸 보고 나는 ‘그냥 여기서 살걸’이라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확연히 차이 나는 가격 앞에서, 잠시였지만 나 역시 오직 가성비의 기준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분명 내가 산 제품은 비싼 만큼 확실히 다른 디자인과 다른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난 알 수 있었다. ‘상대방도 내 마음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단서나 증거’를 찾아야만 고백할 용기가 날 거라며 질문했던 친구들은 겁이 났거나 완벽주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연애에서조차 가성비를 따져 묻길 원했을 뿐.
고용불안과 불평등사회가 준 압박감은 연애마저 최대한의 결과를 얻어야 마땅한 미션이자 작업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그래서 다들 만남 초반을 두고 ‘작업’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고백했을 때 거절하지 않을 거란 확증이 있는 사람에게만 고백하려 하고, 데이트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내는 것이 마뜩잖아 칼 같은 더치페이를 위해 데이트 통장을 만들며, 자기 기준보다 조금이라도 소비를 즐기는 이에게 ‘김치’니 ‘된장’이라는 호칭을 붙여 경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호칭에 의해 폄하당하는 쪽은 압도적으로 여성 쪽인데, 2017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세계경제포럼 발표)에서 144개국 중 116위를 기록하며 심각한 수준의 성별 격차를 기록한 나라에서 이런 폄하가 존재한다는 것도 꽤나 비극적으로 흥미로운 현상으로 보인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일하고도 남자들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아야 하지만, 자기가 만나는 남자에게 높은 경제적 능력을 기대하거나 여자 자신이 돈을 곧잘 쓰면 곧장 김치녀·된장녀라는 혐오 발언을 뒤집어써야 하는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그냥 다들 쉽게 말하지만, 남자가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여자들은 먹고살기가 더 어려워지면 어려워졌지 쉬워지지 않는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적은 기회와 적은 수입을 감당하고도 그 와중에 김치녀로 오인받지 않기 위한 자기 검열까지 해가며 이 거대하고 얄팍한 가성비 제일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묻겠다.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태를 원하는 것이 설마 여자들만의 바람인가?
물론 그토록 가성비만 고민하면서 사람을 만나면 기껏 고백했다가 차갑게 거절당하는 일은 줄어들지도, 데이트 비용을 낼 때 10원 한장까지 똑같이 내게 될지도, 또한 통장 잔고는 좀 덜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 조금도 내줄 생각이 없고, 내 것을 손해 보더라도 기꺼이 무언가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이들의 연애는 겨우 약간의 패배감과 약간의 돈을 세이브할 수 있을 뿐인데 말이다. 가성비상 최고의 선택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계산하고 재단한 결과 손에 쥐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가성비를 따져 묻는 연애는 연애하는 자가 경험할 수 있는 큰 변화와 깨달음을 잃게 만든다. 남자든 여자든 끌리는 상대에게 용기 있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때론 거절당하더라도 상대방의 의사를 그대로 존중하는 것, 사귀는 동안에는 나의 것을 기꺼이 내주고, 자신에게도 못 해본 선물을 상대방에게 해보고, 한번도 받아본 적 없을 헌신을 하되 상대가 별안간 떠나더라도 그조차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온전히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하고 예측하고, 재단하고 평가하는 가성비 지상주의의 연애에서 잉태되는 것은, ‘왜 너는 나만큼 내게 잘해주지 않는가’라는 의문뿐이다. ‘나는 왜 너보다 더 돈을 써야 하는가’라는 치사한 질문도, ‘내가 이렇게 잘해줬는데 어떻게 감히 헤어지자고 말하는가’라는 치졸한 분노도 사실 모양새만 다를 뿐 가성비를 따져 묻고 있다는 점에서 줄기가 같다.
한때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유행했던 ‘제 그린라이트를 꺼야 할까요?’라는 숱한 질문은, ‘계산할 만큼 해봤는데 제가 손해 보는 것 같아 짜증 나요’라는 말의 변주였을 것이다. 일상에서 죽도록 계산기를 두드려야 겨우 버티듯 살아갈 수 있는 한국에서 태어나 연애를 하면서 그 계산기를 내려놓는 일이 수월할 리 없겠지만, 그 계산기를 내려놓지 않는 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가장 수월하고 가장 가성비 높은 건, 그냥 아무도 만나지 않고 솔로로 지내는 것인데 뭐 그렇게 굳이 피곤하게 계산기 두드려가며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엔 연애 초보들에게 무려 연애 스킬(!)을 알려준다는 학원들이 성업 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한숨이 났다. 그나저나 학원에 갖다 준 수업료에 대한 본전은 어떻게들 찾으실 건지 묻고 싶네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