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픔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참을 만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게 아닐까요? 한때 기형도의 시집을 끼고 산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시 ‘포도밭 묘지’를 읽으면 시커먼 고통이 느껴졌어요. 황량하고 앙상한 가지 위에 시체처럼 걸려 그의 삶을 옭아매는 고통이 보였죠. 결국 그는 지금 세상에 없습니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도 뼛속까지 아픔이 박힌 한 남자가 나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그 고통의 출발점이 자신이기에 탈출을 거부하는 주인공 얘기입니다.
시인이나 영화 주인공처럼 고통이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이들이 요즘 많아 보입니다. 과도한 업무로 수척해지는 직장인의 얼굴에서 고통의 그림자가 보이고, 신뢰가 깨진 인간관계로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의 표정에서 아픔이 느껴집니다. 좀비처럼 변해가는 자신을 경멸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안겨준 고통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ESC가 이번 호에 그 고통에서 탈출하는 법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단호한 휴식!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점심시간에 수면 카페에서 잠깐 잠들기, 이불 깔고 요가 하기, 고즈넉한 숲길 걷기 등. 거창하고 어마어마한 실천 행동은 아니지만 일단 이런 휴식을 선택하면 고난에서 서서히 탈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 심각해 ESC 같지 않다고요? 발랄한 재미는 차분한 휴식에서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 지난주 많은 독자님이 ‘퀴즈’ 편에 열광적인 성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수리영역의 15번 정답이 ②가 아니라 ③이라는 걸 알려주셨지요. 제작상 실수가 있었습니다. 송구한 마음 전합니다. 독자 최선우님도 ‘큐’(Q) 편의 주제가 퀴즈라는 걸 맞히셨습니다.
박미향 팀장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