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고기 주세요. 수건고기!” 꼬마 김신은 외할머니가 끓인 들통 몇 개의 어마어마한 양의 곰탕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쫑알거렸다. 둥둥 떠다니는 얇은 고기 조각이 마치 수건 같아 보였다. 그의 혀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바삭하게 익힌 닭 껍질조차 곧잘 먹었다. 칼을 휘두르고 매큼한 양파 냄새를 천연덕스럽게 맡는 자질은 타고나는 게 맞나 보다. 요리사 김신(42)에게 외할머니는 곰탕이다. “외가는 시발택시를 운영했어요. 부모님은 맞벌이하셨죠.” 외할머니는 기사 20여명의 밥과 똘똘한 손자의 끼니까지 챙겼다.
김신은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 ‘수하동’의 곰탕을 앞에 두고 있다. 그가 주문한 특곰탕(사진)이다. “곰탕뿐만 아니라 고등어도 엄청나게 많이 구운”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90살로 작년에 작고한 외할머니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맛이 형편없다면 수하동을 찾을 리 없다.
그는 15년 넘은 경력의 이탈리아 음식 전문가이자 현재 레스토랑 ‘올리브 앤 팬트리’를 운영하는 오너셰프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어요. 곰탕은 설렁탕과 달라 국물이 묽어야 한다고.” 수하동 곰탕은 기름기가 아주 살짝 동동 춤추는 맑은 국물이다. 특곰탕에는 ‘수건고기’도 몇 줌 있고, 양(소의 첫번째 위)이나, 차돌박이도 있다. “이 집 양은 달라요.” 그가 확신에 차 들어 보여준다. 다르다. 찢긴 위의 한쪽은 오돌토돌한 꺼먼색의 살이 붙어 있다. 도대체 요건 뭐란 말인가! 위의 안쪽 돌기다. “이것이 있는 게 국산이라고 해요. 수입산은 굵기도 얇고 없어요.” 칭찬이 이어진다. “양도 푸짐하고.” 수하동은 하동관 강남분점의 사장님 장석철(75)씨의 막내딸인 성지(37)씨가 새롭게 연 곳이다. 주인 장씨는 “수소보다 살이 질기지 않은 암소가 재료”라고 자랑한다.
김씨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고단한 한마디를 던진다. “요리사가 마흔을 넘으면 (체력이 달려서 요리를 더이상) 못한다는 소리가 있어요. 요즘 실감해요. 그래서 보양식인 곰탕이 확 당기나 봐요.” 지지고 볶고 끓이는 주방생활은 고되다. 식탁에 멋지게 등장하는 어여쁜 파스타는 누군가의 땀의 결과물이다.
해가 뚝 떨어지고 모두가 잠든 시간, 그는 업장의 셔터를 내리고 홀연히 이태원동 경리단길의 ‘번’(BURN)으로 향하기도 한다. 한 대의 시가와 싱글몰트위스키 한잔이 있는 곳! “깔끔하게” 몰트위스키 한두잔을 입에 털어 넣고 집에 간다. “주인장이 터키인인데 아주 재미있어요. 파나마 스타일 모자를 쓰고 시가 물고 계시죠. 쿠바 온 것 같아요. 음악도 지지직, 여름날 2층은 창문 열면 모기떼가 달려들어요. 사람 사는 것 같잖아요.” 그는 분위기에 완전 매료됐다. 그의 하루가 알싸한 한잔 위스키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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