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주말 어쩔거야
또다시 피고 진다. 아름다운 것들이 돋아나고 벌어져 향기를 내뿜으며 흩날린다. 이걸 그냥 놔둬선 안 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한 건 지지난주 경남 일대로 매화를 만나러 가서다. 매화나무 즐비한 김해건설공고 교정에서 정말이지 벌떼처럼 모여든 사진가들을 만났다. 사진가들은 굵직한 대롱을 벌들처럼 꽃에 들이대고 있었다. 꽃송이들과, 꽃가루를 다리에 잔뜩 매달고 꽃잎 안으로 파고드는 벌들을 찍고 있었다. 벌들은 잉잉대고 사진가들은 찰칵댔다.
그런데 꽃에 달라붙어 찰칵대지 않는 한 사람. 사진기를 어깨에 멘 채, 꽃가지에 얼굴을 들이댄 사람이 보였다. 백발에 주름진 할아버지. 잉잉대고 찰칵대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꽃향기에 취해 있었다. 사진가가 셔터를 안 누르고 향기에만 취해 있다니. 향기까지 사진에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일까. 첫사랑 여인이 쓰던 향수가 매화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셔터질을 멈추고 나도 맡고 싶었다. 아, 꽃내음. 홍매·백매·청매의 향기가 다른 듯했고, 심지어 한 나무 한 가지에 돋은 꽃들조차 다른 듯도 하였다. 돌아오며 생각했다. 맡아야겠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집 앞에 거리에 줄줄이 꽃필 꽃나무들이 있지 않나. 올봄 자주 꽃나무 곁에 설 참이다. 나른해져 주저앉고 싶을 때까지 향기에 취해봐야겠다. 돋아나 벌어져 내뿜고 흩날리기 전에. 가기만 하는 봄날들, 이 향기를 그냥 놔둘 순 없는 일이다.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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