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셰프의 단골집
그가 좋다. 그의 손끝에서 튀어나오는 수플레가 좋다. 푹, 숟가락을 깊숙이 넣어 뭉클한 덩어리를 당겨올릴 때마다 동공이 커진다. 혓바늘을 날 세워 폭풍흡입하다 보면 추운 현실도 잠시 잊는다. 음식도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다. 박민재(46) 셰프의 수플레(사진)는 식탁을 찾은 이들에게 위로다. 프랑스 디저트인 수플레는 단순해 보이지만 의외로 최고의 맛을 내기 어렵다. 가장 단순한 진리가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처럼. 그는 프렌치 레스토랑 ‘비앙 에트르’(bien-etre)를 운영한다.
원래 그는 프랑스요리 전문가가 아니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부대찌개집을 운영했던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회사를 다니다 부대찌개집을 하던 친구에게 일주일 배워 덜컥 음식점을 열었다. 1990년대 말, 그의 나이 30대 초반일 때다. 그야말로 대박 행진이었다. 80석이 늘 만석에다 3회전은 다반사였다. 5년간 그렇게 돈을 벌었다. 불현듯 “돈만 보고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생각에 프랑스요리 유학을 떠났다. 아내의 반대가 심했지만 “어차피 요리를 시작했으니 요리사로서 목표를 이루고 싶었다”고 한다.
부대찌개와 프랑스요리라! 남극과 북극만큼 먼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는 낯선 프랑스에서 고생은 원없이 했다. 그의 고생담은 생략하겠다. 짐작하시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찌되었든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하는 등 출중한 실력을 가진 셰프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 끝에는 오르막이 있기 마련이다.
2001년 ‘르 꺄레’(Le Carre)를 열었지만 부대찌개집의 영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2006년 결국 손해를 보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무너질 수는 없었다. 3년 뒤 청담동에 테이블 2~3개, 49.5㎡(15평) 정도의 소박한 비앙 에트르를 열었다. 흐르는 세월을 버텼다.
최근 그는 종로구 화동 송원아트센터 1층에 비앙 에트르를 옮겼다. 40석이 넘고, 연한 파스텔톤 의자와 높은 천장,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다. 그의 음식은 도예가 김영환씨 접시에 담겨 나온다. 과거 아내와 둘이 꾸려가던 청담동 비앙 에트르는 사뭇 다르다. 후배 요리사만 5명이다. 물론 박씨의 자금력으로 연 것은 아니다. “프랑스요리는 프랑스요리다워야 합니다.” 요리철학은 여전하다.
자, 이쯤 되면 슬슬 궁금해진다. 그의 단골집은 어딜까? 역시 한식집이다. 일요일 그는 아내와 장을 보러 집을 나선다. 이런저런 식재료를 구경하고 살피다 보면 시간이 후딱 간다. 시장기가 돈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고궁’(서울 종로구 인사동)으로 향한다. 육회비빔밥, 낙지비빔밥, 새우콩나물비빔밥 등 고궁의 비빔밥이 그를 맞는다. 아내와의 데이트의 마지막은 비빔밥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박민재 셰프의 수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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