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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니므니까?

등록 2012-10-24 17:33수정 2013-06-17 17:25

[매거진 esc] 셰프의 단골집
중독. 마약 같은 어두운 단어와 결합하면 ‘중독’은 음침한 범죄의 현장과 겹쳐진다. 사랑, 일 같은 말을 만나면 뭔가 매력적인 것에 빠져버린 감정에 닿는다. 요리사 김정은(39)씨는 중독자다. 일에 ‘빠져도 너무 빠져’ 버렸다. 현재 그는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과 교수다. 식품업체의 제품 개발과 빵집이나 카페, 음식점 컨설팅도 한다. 요리 잡지에 기고는 기본. 책도 7권이나 출간했다. 올해 발간 예정인 책이 3권이나 된다. 게다가 두 아이의 엄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챙기는 일도 팽개칠 수 없다. “큰아들 종석이가 유치원 다닐 때는 친구들 다 불러 모아 요리 만들기도 했어요.” 도무지 몸이 열개라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독임에 틀림없다. 왜일까? “너무 재미있어요.” 이유가 단순하다. ‘사랑도 명예도 돈도’ 아니다. 음식을 다루는 일들이 너무 즐거워서 내려놓을 수가 없단다.

박미향 기자 제공
박미향 기자 제공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음식 하기를 좋아했어요.” 중독의 역사가 길다. 그는 일본으로 발령이 난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타향이었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한식을 만들었다. 일본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지만 주방에서 노는 게 재미있어서 요리학교를 또 갔다.

“그때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쯤 되면 ‘사람이 아니므니다’ 소리가 절로 난다.

이렇게 시간을 촘촘히 꾸려가는 그지만 맛집 순례만큼은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이다. 배가 쪼르륵 점심시간을 알려오면 제자들과 길을 나선다. 배화여대가 있는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1길 주변은 소담하고 맛깔스러운 집들이 많다. 그는 학교와 가까운 통인동, 체부동, 적선동, 부암동 등 일대를 점심나들이 여행을 한다. 맛난 곳을 만나면 눈도장을 찍는다. 부암동까지 걸어가 ‘오로지 김치찌개’(종로구 부암동)에서 정갈하고 매콤한 김치찌개로 한 끼를 해결하고 날이 좋으면 성곡미술관까지 걸어가 ‘커피스트’(종로구 신문로2가)에서 고소한 커피를 마신다. 제자들과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목화식당’(종로구 창성동)의 햄버그스테이크를 먹고 ‘유로 구르메’(종로구 통의동)에서 차 한잔과 티라미수(사진)로 2차를 한다. 동네 여행에서 콕 찍은 집들이 그의 단골집이다.

‘오로지 김치찌개’의 맛은 최근 그가 컨설팅 한 ‘250g 김치찌개’(서울 강남구 논현동) 창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250g’은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돼지고기 양이다. 커피스트는 커피마니아들에게 소문난 커피집이다. “목화식당은 일본에서 온 친구들을 자주 데리고 갑니다. 좋아해요.” 쌀쌀한 가을바람에도 그는 동네 맛집 여행을 제자들과 나선다. 가슴에 묻어둔 슬픔은 일과 동네 맛집 여행으로 달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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