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셰프의 단골집
오래전 일이다. 언제인지도 생각이 안 난다. 장소는 중국 베이징. 때는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 붉은 자금성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길을 잃었다.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떠는 작은 먼지가 되었다. ‘바보’ 같은 여행객이었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만큼 불안감은 커지기만 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어찌하여 자금성은 이리도 넓단 말인가! 중국 음식을 접할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알면 알수록 먹으면 먹을수록 중식의 세계는 자금성 같아 보였다. ‘빨리빨리’ 서두는 우리네 음식습관 때문에 한국의 중식은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 위주로 발달했다. “예전에는 칼판에 채소 같은 거 다듬는 이가 대장이었는데 요즘은 웍(중식 프라이팬)을 잡는 이가 대장이에요.” 화교 출신 중식 요리사 리옌푸(이연복·53)의 말이다. 빨리 볶아내는 웍 활용 기술이 중요해진 것이다.
14살에 요리를 시작한 그는 39년 경력의 중식 요리사다. 22살 되던 해에 중국대사관(한-중 수교 전이라 당시는 대만인 셈)의 최연소 요리사가 되었다. ‘창아헌’, ‘덕성옥’, 사보이호텔 중식당 등에서 연마한 솜씨가 꽤 훌륭했다. 그의 고생담은 한국 중식사다. “어릴 때 중국집에서 먹고 잤는데 주인은 아예 밖에서 잠그고 퇴근했어요.” 자유가 그리워 ‘쇼생크 탈출’을 감행한 앤디 듀프레인처럼 그도 창문을 넘은 적이 있다. 돈을 떼이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제 그는 미식가들에게 맛나다고 소문난 ‘목란’을 운영한다. 예약은 필수다. 유명세를 탄 요리사들 중에는 주방은 뒷전, 비즈니스에만 매달리는 이들이 많다. 그는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이 주방을 꼿꼿이 지킨다.
그의 단골집은 뜻밖에 한정식집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토속촌’(삼계탕집이 아니다)과 ‘수빈’이다. 토속촌은 가족과 부담 없이 한 끼 먹으러 갈 때 간다. 가격은 1인당 1만2000원. 12가지 넘는 음식이 한 상 떡하니 나온다. ‘수빈’은 한국한성화교중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갑자기 귀한 손님이 오거나 부산에 사는 아들 부부가 오면 가죠.” 단품 가격은 약 8000원에서 3만5000원이지만 그는 4인 기준 6만9000원 하는 ‘수빈정식 세트1’을 자주 주문한다. 간장게장(사진), 떡갈비, 황태구이 등이 같이 나와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곳도 모두 반찬이 맛있어요. 손맛이 대단하다 싶죠. 반찬의 양이 적고 재활용을 안 하는 것으로 보여요.” 주의 깊게 관찰하면 반찬 재활용 여부는 금세 안단다. “재활용하는 집은 남은 반찬 정리할 때 조심스럽게 해요.”
중국 요리가 소재인 소설 <칸지의 부엌>에는 대서사시 같은 중국 요리들이 등장한다. 복잡하고 섬세한 맛들을 읽다 보면 주인공들의 사랑 따위는 눈에 안 들어온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중국 요리들은 영원한 호기심의 대상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정식집 ‘수빈’. 박미향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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