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주말 어쩔거야
자, 큰 도화지를 꺼낸다. 땅따먹기 지도 같은 표를 그린다. 칸 안에 숫자와 그 숫자들의 주인들을 넣는다. 이 일은 고도의 집중력과 정확한 숫자의 조합, 엄격한 자기감정의 통제가 필요하다. 전두엽과 두정엽이 마치 수박이 쫙 갈라지는 것처럼 아파온다. 완성된 도표 위에 제목을 적는다. 극장하루살이표, 오전 8시30분-도둑들, 오전 11시-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후 2시40분-다크나이트라이즈 등. 슬리퍼 질질 끌고 주말 아침, 극장으로 출동하기 전에 세련된 백 대신 옆구리에 이 도화지를 낀다. ‘24시간 영화 이어보기’를 위해선 꼭 필요하다.
다른 말로 ‘영화 연달아 보기’인 이 놀이의 감초는 먹을거리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영화관 내 음식물 반입을 허용하도록 극장주들에게 권고했다. 화면 속 족발을 같이 뜯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막상 실천은 얼굴 두께에 달렸다. 영화관 관계자에게 들어보면 “족발, 순대, 떡볶이 등을 가져와 먹는 분”들에 대해 옆자리 관람객의 항의가 많다고 한다. 영화관 팝콘은 양파나 치즈 등 맛도 다양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곧 영화관 팝콘의 칼로리와 나트륨 함량에 관한 자율영양표시제를 권고할 예정이다.
이 놀이의 단점은 도둑 복장을 한 전지현이 조선시대 얼음을 훔치고, 만날 수 있으면 간도 떼 주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크리스천 베일이 서울 상공에서 우리 공군 비행기를 모는 엄청난 기억의 혼돈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게으름뱅이를 위해 이보다 좋은 놀이가 있을까!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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