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야(野)한 밥상
눈을 감는다. 다섯손가락을 바짝 세운다. 아래부터 천천히 쓰다듬는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오른쪽, 왼쪽 더듬는다. 둥글다. 탱탱하다. 완만하게 파인 골이 나타난다. 깊다. 맨 위에 도착한다. 마지막 손놀림이다. 상처의 딱지처럼 거칠한 것들이 나타난다. 눈을 뜨자 토마토가 보인다. 거친 딱지는 꼭지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 붉지 않다. 덜 익은 토마토의 색과는 다른 푸른색과 황갈색, 주홍빛이 곳곳에 묻어 있다. 크기도 작다. 성인 여성의 한손에 쏙 들어간다.
맛은? 탄탄해서 씹는 맛이 있고 즙도 실속 없이 줄줄 흐르지 않고 자존심 바짝 세우듯 절도있게 흐른다. 붉은 토마토에 질린 이나 호기심이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살 만하다. 일명 ‘대저짭짤이토마토’다. ‘대저’는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을 말한다. ‘짭짤이’는 이 일대에서 재배되는 토마토에 농부들이 붙인 브랜드다. 10년 전 일이다.
과육은 단단하고 당도도 높다. 지금이 한창 수확철이다. 대저농협 이충선 판매계 대리는 “일반 토마토는 당도가 4~5브릭스(brix) 나오는데 대저는 6~7브릭스 나와요. 토마토는 채소류인데 거의 배나 사과에서 나오는 당도”라고 자랑한다. 대저토마토는 자세히 보면 줄무늬가 있다. 이런 줄무늬가 많을수록 좋은 ‘놈’이다. 이 지역의 자랑거리인 대저토마토의 역사는 약 60년이다. 낙동강 하구 삼각주에 퇴적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이 만든 맛이다. 대저토마토가 인기를 끌자 다른 지역 농부들도 견학차 많이 이곳을 찾지만 다른 지역에서 재배가 쉽지 않다. 경매 때마다 가격은 다르지만 일반 빨간 토마토보다 약 2만원 정도(5㎏ 기준)가 비싸다.
토마토는 하늘이 내려준 건강식품이다. 항암효과에 탁월한 리코펜(lycopene)이 풍부하다는 것은 이미 전 지구인이 다 아는 소리다. 익혀 먹는 것이 더 건강에 좋고, 설탕을 뿌리면 영양소 일부가 파괴돼 좋지 않다는 것도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토마토지만 인기가 없던 시절도 있었다. 중세시대 서양인들은 토마토의 붉은색을 두려워해서 ‘악마의 과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독성이 있다는 잘못된 소문도 돌았다.
대저농협 누리집에는 다양한 토마토 요리법이 있는데, 그중에서 ‘토마토죽’이 있다. ‘토마토로 별짓을 다 하는군’ 생각할 수 있지만 서양의 토마토 수프와는 다른 별미다. 대저토마토는 그 단단한 특징을 십분 활용해 쌈장용 된장에 넣으면 어떨까! 마늘처럼 잘게 다져 섞는 것이다. 푸른 숲(쌈 채소)과 비옥한 토양(된장)에 아삭한 토마토가 맛을 뽐내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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