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반전이라 행복해요

등록 2012-03-21 17:53

[매거진 esc] 야(野)한 밥상
성질 급한 물고기를 꼽으라면 밴댕이가 첫번째다. 잡히자마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죽는다. 과일 중에도 비슷한 놈이 있다. 무화과다. 껍질과 과육이 연해서 따고 며칠 지나면 못 먹을 지경이 된다. 말리거나 냉동 상태로 보관해야 한다.

무화과는 우리에게 외국 동전처럼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탄탄한 껍질과는 100% 다른 속 때문이다. 반전이다. 까칠한 껍질을 훌훌 벗겨내면 과일즙이 주르륵 뚝뚝 흥건하게 흘러내린다. 도무지 겉만 봐서는 달콤한 맛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하지만 설탕처럼 천박하지 않은 단맛이 여름날 부는 솔바람처럼 얇게 혀에 닿는다.

무화과는 사람마다 다른, 기억 저편의 어딘가와 닿아 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시인 김지하의 시 ‘무화과’가 떠오를 것이요, 오로지 미용만이 살길이야 외치는 젊은이라면 무화과를 즐겨 먹은 클레오파트라가 생각날 것이요, 성경책을 끼고 산 기독교 신자라면 알몸이 된 이브와 아담이 처음 입은 옷이 무화과나무 잎이란 것을 기억해낼 것이다. 요리사는 고대 로마인들이 거위를 살찌울 때 무화과를 먹였다는 기록에 동공이 확장될 것이다.

겉에서 꽃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과일이 성장하기 때문에 ‘무화과’(無花果)라고 이름 지은 이 과일은 어디에 많을까? 역시 남도다. 전라남도 영암군은 국내 무화과 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곳이다.

1980년 한 일간지 기사에는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한낱 보잘것없는 빈촌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빈촌이 오늘의 부농지대로 바뀐 데는 (중략) 삼호단협 조합장인 박부길씨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조합장은 (중략) 이 동네의 가난을 없애기 위해 70년 외국에서 무화과 종자를 도입, 재배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동네가 바로 영암이다. 1979년 주민들은 200t을 생산해서 5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그 맛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영암군 삼호읍에 가면 삼호농협식품가공공장이 있다. 박부길씨가 뿌린 씨앗이 울창한 열매를 맺은 곳 중 하나다. 이곳에는 무화과 잼(사진), 무화과 건빵, 무화과 주스, 무화과 양갱 등의 가공품이 있다. 이종옥 공장장은 “입안에 씨가 박혀 톡톡 씹히는 양갱이 가장 인기”가 있다고 전한다. 8~11월 중순이 제철인 무화과를 겨울이나 봄에 즐기는 방법이다. 무화과 잼은 빵에만 발라 먹기에는 아깝다. 불고기 양념으로 사용하면 독특한 풍미가 그윽한 요리가 만들어진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눈크기 27cm 대왕오징어 ‘왕 눈’ 된 이유
허준영 “노회찬은 굉장히 네거티브하다”
F16 또 추락…국내서만 10대 넘게 추락
소개팅·미팅 꼴불견 1위는?
미래의 놀이법, 동네방네 커뮤니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