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라나다의 아시안 퓨전레스토랑에서 먹은 초밥.
[매거진 esc] 김형렬의 트래블 기어
미숫가루는 내 배낭의 단골손님이었다. 오랜 여행을 떠날라치면 늘 어머니께 미숫가루를 부탁했다. 보리·콩·찹쌀 등 잡곡을 볶아 빻아서 만들기 때문에, 걸쭉하게 물에 타 마시면 간단한 요깃거리가 된다.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훌륭한 음료이기도 하다. 가루이니 부피도 무게도 크지 않아 가지고 다니기에 딱 좋다. 배낭여행 다니다 보면 비상식량(?)으로 그만이었다.
미숫가루가 가장 요긴할 때는 먼거리를 버스나 기차로 여행할 때였다. 대여섯 시간 이동할 때나, 아침 6시 해뜰 때 탄 차가 해질 무렵 도착하는 일정이 되면 점심 말고도 중간 간식은 필수였다. 식수는 항상 챙겨가지고 다녔으니 이때마다 타먹는 미숫가루는 정말 좋은 간식거리가 되었다. 세계 촌구석 어디에도 코카콜라가 없는 곳은 없었지만, 달콤한 설탕 맛만으로는 미숫가루의 포만감을 절대 따라올 수 없었다. 게다가 곡식으로 만든 것이니 영양 만점이고 속도 편안하다.
하지만 미숫가루로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몸살이 나서 몸이 으슬으슬 떨릴 때, 추운 나라를 장기간 여행할 때이다. 이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뜨끈한 국물을 생각한다. 한국만큼 물 넣고 끓이는 요리, 탕·국·찌개류가 발달한 나라도 별로 없다는 걸 실감하는 것도 이때다. 외국에서는 서너 가지 수프, 혹은 포리지 외에는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차이니스 레스토랑’(중국 식당)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 어느 곳을 가나 중국 식당 없는 도시는 없다. 짜장면·짬뽕은 없지만, ‘야채수프’만 주문해도 우리나라 배춧국과 얼추 비슷한 게 나온다. 게다가 중국 요리는 볶거나 쪄서 따뜻하다. 가격도 서울의 중국집처럼, 그 나라의 평균 식사 요금 수준으로 착한 경우가 많다. 필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숙소 근처 중국집에 들어갔다가 그 집이 뷔페라서 복터졌던 적도 있었다.
타이와 베트남 레스토랑은 따뜻한 쌀국수류가 있고 가격이 비싸지 않아 이용할 만하다. 한국 식당의 경우 한류 영향 때문인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비싸거나 (한국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곳도 많다. 동유럽이나 동남아 사회주의 국가라면 더러 찾아볼 수 있는 북한 식당들을 이용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수상하여 출입에 눈치가 보인다.
요즘 여행용 간식이나 비상식량 챙기는 건 일도 아니다. 넘쳐나는 것이 인스턴트식품이니 취향에 따라 고르면 된다. 하지만 포장김치·밑반찬·과일 등은 입국 수속 때 걸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 웬만한 국제도시의 슈퍼마켓에선, 그 나라 것이든 한국 수입품이든 컵라면을 파는 곳이 많아 골라 맛보는 재미도 괜찮다. 각 도시의 우유만은 꼭 마셔본다는 여행자도 있다고 하니, 맛 기행이라는 것이 꼭 일류 요리만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글·사진 호텔자바 이사(www.hotelja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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