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티브이를 놓고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광고모델도 엘지는 원빈(사진 위), 삼성은 현빈(아래)을 기용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매거진 esc] 이응일 감독의 디지털 불청객
기술 폭발 중인 ‘바보상자’, 그것을 알려주마
기술 폭발 중인 ‘바보상자’, 그것을 알려주마
아시다시피 텔레비전은 요망한 물건이다. 티브이는 외로운 현대인에게 친구이자 말동무 같은 존재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양을 세는 대신 축구 중계를 켜놓고 멍하니 바라보다 잠드는 이도 있다. 우리가 티브이에 저항하는 방법은 오직 나물을 다듬거나 빨래를 개며 티브이에 혼을 완전히 뺏기지 않는 것뿐이다.
대학 시절 필자가 첫 ‘아르바이트비’로 산 브라운관 티브이는 아직 멀쩡했다. 그렇지만 드디어 고화질(HD) 티브이를 장만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도래했기에, 올해 초 못난 아들은 부모님을 부추겨 47인치 HD 티브이를 거실에 들였다. 15년을 같이한 대우 개벽 29인치 티브이를 설치기사님이 실어가던 날, 작별의 아쉬움에 우리는 그 녀석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경기 파주의 우리 마을은 지상파 디지털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하여 원래 보던 스카이라이프에 올레티브이 결합상품을 신청해서 말로만 듣던 아이피(IP) 티브이를 보게 되었는데, 오오 이것은… 신천지가 열리는 경험이다. 종영된 <지붕 뚫고 하이킥>을 몰아서 보고, 교육방송의 에서 관심 있는 주제를 골라 들을 수도 있다. 게다가 영화, 미드, 뉴스 불문하고 칼날같이 예리한 HD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최면에 걸린 듯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하고 날새기 일쑤라, 참으로 새로운 요물이 나타났다. 심지어 영화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어떤 위기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HDTV란? LCD/PDP/LED/블루레이?
티브이의 본질은 앉아서 큰 화면으로 수동적으로 몰입해서 보는 매체. 스마트폰의 화면은 몰입도는 가장 낮지만 접근성은 가장 크다. 반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접근성은 최소지만 몰입도는 최대다. 가정의 티브이는 극장만큼은 아니지만 꽤 집중해서 수동적으로 보는 매체다.
그런데 이런 티브이가 변하고 있다. HD 티브이의 대중화, 지상파 디지털 전환, IP 티브이, 스마트 티브이, 3D 티브이 등등… 지금 티브이의 영토는 융합과 분화가 잔뜩 혼재된 기술 폭발의 전쟁 중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2011년 한국, 티브이의 진화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다.
HD 티브이는 한마디로 극장용 35㎜ 필름의 화질에 필적하는 고선명(High Definition) 티브이다. 소위 ‘풀HD’는 가로세로 1920×1080개의 점으로 구성해 640×480인 종래의 표준화면(SD)보다 약 4.5배 선명하다. 또한 화면비가 16:9로 가로로 좀더 길쭉하다. 그래서 SD 방송을 HD 티브이로 보면 화면이 조악하고 옆으로 길게 늘어져 보인다. 우리 아버지가 김연아가 통통해졌다고 오해하신 이유다.
아날로그 신호로 제공되는 종래의 지상파 SD 방송은 디지털 HD 방송으로 전환중이다. 현재 지상파 디지털 방송은 수도권에서는 남산·관악산·용문산에서 중계된다. 지상파 권역에 속하고 종합편성채널만 본다면 굳이 케이블 등에 가입하지 않고 전용 안테나나 옷걸이로 자작한 안테나로 쉽게 HD 방송을 즐길 수 있다. 아, 물론 먼저 HD 티브이가 있어야 한다. ‘지구 멸망의 해’인 2012년에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된다니 서둘러야겠다….
HD 티브이는 고선명이기에 기존의 브라운관으로 제작하면 덩치가 너무 커진다. 그래서 일찌감치 주로 LCD(액정화면)나 PDP(플라스마화면) 등의 평판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LCD가 훨씬 대중화되었지만 PDP도 자연스러운 색감과 깊이있는 블랙 표현이 특징이니 고려해볼 만하다. 요즘 유행하는 LED 티브이는 별것 아니다. LCD의 광원인 CCFL 형광등을 LED(발광다이오드)로 대체한 것으로 LCD 티브이의 한 종류다. 전력 소모가 적고 더 얇게 만들 수 있다. 화면도 밝고 화사하지만 아직은 비싼 것이 흠이다.
IP 티브이로 최신 영화를 바로 볼 수 있지만 영화를 소장해서 두고두고 보길 원하는 이도 있겠다. 영화 애호가라면 디브이디의 후예이자 HD 영상이 재생되는 블루레이 플레이어도 함께 장만하면 좋겠다. 또한 디빅스 플레이어라는 동영상 재생기도 있으나, 요즘 티브이는 동영상을 이동식 저장장치(USB)에 담아 티브이에 꽂아 재생할 수 있다.
삼성·엘지 3D 티브이-막강 화질이냐, 눈의 편안함이냐
우리는 양쪽 눈으로 보는 시각 정보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세상을 입체로 인식한다. 따라서 3D 티브이 기술의 핵심은 시청자의 두 눈에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을 따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보통 HD 티브이에 비해 3D-HD 티브이는 화면에 구현되는 정보의 양이 정확히 2배가 될 것이다.
최근 국내 거대기업인 삼성과 엘지가 벌인 3D 티브이 ‘전쟁’은 참으로 거칠었다. 삼성은 왼쪽 화면과 오른쪽 화면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1초에 240번) 한 화면에 번갈아 쏘아주고, 이를 전용 셔터안경(양쪽 안경알이 교대로 꺼지고 켜진다)을 쓰고 보는 방식이다. 반면 엘지는 화면의 1080개 가로선에서 홀수 줄과 짝수 줄에 각기 다른 각도의 편광 필름을 입혀서, 흔히 3D 극장에서 쓰는 편광 안경을 쓰고 본다.
강남역 삼성 ‘딜라이트’ 체험관과 씨지브이 영화관에 마련된 엘지의 3D 티브이 체험관을 오가며 양 사의 모델을 비교해 봤다. 논쟁의 초점은 화질과 깜박임이다. 엘지의 경우는 근본적으로 티브이의 세로줄을 양 눈에 절반씩(540줄) 나눠 쓰므로 해상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엘지의 방식은 풀HD가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엘지 쪽에서는 양쪽 눈에서 받아들인 영상을 뇌에서 합치면서 1080 풀HD가 된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또한 삼성의 3D 티브이는 양쪽 눈이 빠르게 깜박이므로 어지럼증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냉혹한 케이오승을 기대했기에 싱겁긴 하지만, 결론은 각자의 약점이 상대방의 강점이었다. 엘지는 분명 풀HD는 아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체감 화질이 심하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선명도는 다소 부족하지만 눈에 부담이 없고 오래 보아도 편안했다. 삼성은 또렷한 풀HD를 구현했지만 예민한 사람에게는 미약한 깜박임이 거슬릴 수 있고, 특히 주변 조명에 영향을 받았다.
전용 안경의 차이도 중요한데, 싸고 가벼운 엘지의 편광안경은 분명 장점으로 작용했다. 삼성의 셔터안경은 생각만큼 무겁진 않았지만 충전 등 관리에 신경써야 하고, 최소 5만원 이상의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시장의 반응을 종합하면 현재까지는 많은 소비자들이 엘지의 편안한 화면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솔직히 필자는 3D 티브이는 ‘아직’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3D 티브이의 관련 기술들이 발전일로에 있고 신호/저장규격이 표준화되지 않았다. 또한 3D로 제작된 콘텐츠가 여전히 많지 않다. 티브이는 한번 사면 적어도 10년은 쓰는 물건 아닌가? 당장 바꿀 계획이 있다면 괜찮은 품질의 일반 HD 티브이를 선택하고, 3D 티브이를 고집한다면 2012년 이후가 낫겠다. 그때쯤 되면 ‘HD 티브이’는 그냥 ‘티브이’가 될 것이다.
다음번에는 이어서 IP 티브이와 스마트 티브이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번에 도움 주신 삼성 딜라이트와 엘지 3D 티브이 체험관 직원들께 감사드린다.^^
글 이응일 영화감독·사진 제공 엘지전자, 삼성전자
HD 티브이는 한마디로 극장용 35㎜ 필름의 화질에 필적하는 고선명(High Definition) 티브이다. 소위 ‘풀HD’는 가로세로 1920×1080개의 점으로 구성해 640×480인 종래의 표준화면(SD)보다 약 4.5배 선명하다. 또한 화면비가 16:9로 가로로 좀더 길쭉하다. 그래서 SD 방송을 HD 티브이로 보면 화면이 조악하고 옆으로 길게 늘어져 보인다. 우리 아버지가 김연아가 통통해졌다고 오해하신 이유다.
삼성전자 모델 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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